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돈, 너무 빨리 빠져나간다

국내선 지갑 닫고 해외선 "쓰고 보자"<br>해외소비 5년새 2배·조기유학 행렬에<br>서비스수지 적자 매달 사상최대치 경신<br>부동산취득 급증 자본수지도 빨간 불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해외 소비가 5년 사이 두 배로 급증하는가 하면 어린아이까지 유학 행렬에 동참하면서 서비스수지 적자폭이 매달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에서 사들인 부동산도 올들어 4개월도 안돼 지난해 전체의 네 배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서비스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적ㆍ정책적 노력이 헛바퀴를 도는 사이 환율하락을 등에 업고 ‘해외에서 돈 쓰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이러다 보니 전체 거시지표가 나아지는데도 체감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17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ㆍ민간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환율이 최근 달러당 950원선까지 추락하면서 해외로 돈이 점점 더 빨리 빠져나가고 있다. 교과서식 논리로는 ‘환율 하락→수입물가 하락→국내 소비물가 하락→국내 소비 증가’라는 선순환이 나타나야 하는데 해외에서만 돈을 쓰는 왜곡된 경제 시스템이 형성된 셈이다. 한은의 통계를 보면 가계 부문의 전체 소비지출(명목GDP, 국내총생산 기준) 가운데 해외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0년 2.1%에서 지난해 말 3.2%까지 올라갔고 이 같은 상승추세는 올 들어서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원화가치가 1% 절상될 때 해외 소비의 GDP 대비 비중이 0.025%포인트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금액으로는 2000년 6조3,716억원에서 지난해 13조3,698억원까지 늘어나 5년 만에 109.8%나 증가했다. 환란 당시인 98년의 3조2,878억원보다는 네 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자금의 해외유출 현상은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핵심 항목 가운데 하나인 서비스수지 적자폭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서비스적자는 2003년 74억달러에서 지난해 131억달러로 급증하더니 올 들어 1∼2월 두 달 동안 34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8억3,000만달러보다 무려 88.9%나 늘었다. 적자폭은 환율하락 속도 이상으로 커져 경상수지가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해외 소비가 늘어나다 보니 서비스 항목을 이루는 여행수지 적자 규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 안에 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유학생 수 증가속도도 지나치게 가파른 느낌이다. 교육인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대학생 이상 해외 유학생 수는 2001년 14만9,933명에서 지난해 4월 현재 19만2,254명으로 늘었고, 지금은 20만명 가까이 올라왔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통계를 구하는 중인데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유학 목적으로 떠나는 초ㆍ중ㆍ고교생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통제불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2001년 7,944명에 2003년 1만498만명으로 뛰어 오르더니 2004년에는 1만6,446명으로 증가했다. 증가속도로 보면 지난해 말에는 2만명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돈 빠져나가는 모습은 국민 계정상의 자본수지 항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본수지의 절대적인 규모는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경계등이 켜졌다고 할 수 있다. 재경부의 통계로 본 해외 부동산 취득 건수는 3월 한달 동안 50건, 1,729만달러로 금액으로만 따질 경우 지난해 전체 취득 금액(873만달러)의 두 배 수준에 달했다. 올들어 1~3월까지의 부동산 취득 건수는 99건에 이르렀고 4월 중순까지는 이미 지난해의 네 배인 108건을 넘었을 것으로 재경부는 보고 있다. 문제는 돈 빠져나가는 모습이 구조적 양상 속에서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KDI는 최근 내놓은 ‘1ㆍ4분기 경제전망’에서 서비스수지 적자 현상을 이례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서비스적자가 추세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환율 하락이라는 단기적 요인이 추가되면서 올해도 적자폭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KDI는 특히 “서비스적자의 상당 부분이 교역규모 확대와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 등 보다 장기적인 요인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단순히 돈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볼 게 아니라 서비스 산업이라는 전체 틀 속에서 바라봐야 하며, 비상벨의 볼륨이 한계 수준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증권은 최근 이 같은 이유 등으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지속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시대가 올해로 끝날 것이라는 경고를 던졌고, KDI도 올 경상수지 흑자 전망을 당초 124억달러에서 41억달러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국민의 소비 패턴이 해외 소비 비중을 자꾸 키워가는 쪽으로 고착되고 있다”며 “이는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성장이나 수출을 내수 회복으로 연결시키는 고리를 약하게 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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