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은 15일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일본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이른바 '오코토바(お言葉·말씀)'라고 불리는 발언을 하며 전쟁 반성과 세계 평화 등을 언급했다. 그는 "여기서 과거를 돌아보고 앞선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전 국민과 함께 싸움터에서 죽고 전화(戰禍)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추도의 뜻을 표명하며 세계의 평화와 우리나라가 한층 발전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 일왕이 추도식에서 전쟁에 관해 '깊은 반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평화의 존속을 갈망하는 국민의 의식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오늘의 평화와 번영을 쌓아왔다"며 그간 사용하지 않던 표현도 덧붙였다.
반면 이날 아베 총리는 역대 총리가 언급해온 아시아 국가에 대한 가해와 이에 대한 반성의 뜻을 3년째 생략했다. 아베 총리는 "전후 70년을 맞이해 전쟁의 참화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 그리고 지금을 사는 세대, 내일을 살 세대를 위해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겠다. 그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역대 일본 총리가 패전일 추도식에서 언급해온 '부전(不戰) 맹세'를 지난 2013년과 2014년 추도식에서 생략해 논란을 빚었던 아베 총리는 올해는 표현을 다소 바꿔 '전쟁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일본 언론들은 일왕의 발언에 주목했다. 도쿄신문은 일왕의 이날 메시지에 관해 "과거 추도식보다 한층 파고든 표현이 여기저기 반영된 점이 강한 인상을 준다"며 "전후 70년이 지나서 전몰자추도와 평화의 계승에 위구(危懼·염려하고 두려워함)의 뜻을 품고 있다는 증거"라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추도식의 발언 문안을 아키히토 일왕이 직접 썼으며 근래에는 전년도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쓰다가 이번에 이례적으로 내용에 변화를 줬다고 분석했다.
일왕의 이번 메시지는 전후 70년 담화의 '반성'과 '사죄'가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 총리에 대한 견제의 의미라는 해석이 나오는 등 아베 총리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헌법이 일왕을 국가의 상징,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일본인은 일왕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일본 현직 각료와 국회의원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극우 행보를 이어갔다. 이번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현직 각료인 아리무라 하루코 여성활약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야마타니 에리코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 등 3명은 지난해 10월 야스쿠니 가을 제사와 올 4월 봄 제사 때 잇달아 참배한 단골 참배객들이다.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소속된 여야 국회의원 66명도 야스쿠니 신사를 일제히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배는 하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총재 특보를 시켜 공물의 일종인 다마구시(玉串·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료를 개인 돈으로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