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재도약하는 건설코리아] 3> 해외건설 양(量)에서 질(質)로

플랜트 EPC가 '중동 특수' 일등공신<br>기술력·노하우 세계 수준…연일 플랜트 공사 수주<br>건축·토목등 보다 부가가치도 높아 수익 크게 늘어<br>IMF후 위축됐던 SOC등 투자개발형 사업도 활기

최근 국내건설업체들이 고부가가치의 가스ㆍ오일 플랜트공사 수주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우리나라 해외건설이 양적인 면은 물론 질적으로도 큰 성장을 하고 있다. 사진은 현대건설이 공사를 마친 말레이시아 유화 플랜트 시설.

‘누적 해외건설 실적 2,000억달러 돌파, 올해 해외건설 41년 사상 최대실적 경신 확실시.’ 요즘 언론 지면을 장식하는 이 같은 헤드라인들은 ‘파죽지세’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국내 건설업계의 쾌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동지역 플랜트(산업설비) 발주가 폭주하면서 건설업체들은 연일 대형 프로젝트의 수주소식을 전해 오고, 한편에선 일손이 딸려 더 이상 수주가 곤란할 지경이라는 행복한 비명마저 나온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호황’이 고유가로 넘쳐나는 ‘오일달러’ 덕분이라고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일달러라고 해서 아무나 챙길 수 있는 ‘눈먼 돈’은 아니라는 점이다. 열사의 사막에 맨손으로 땀방울을 심던 70~80년대 초반의 호황과 플랜트 수주로 다시 기회를 잡은 90년대 초중반의 도약, 그리고 지금 세계 10대 건설강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국내 건설업계의 ‘내공’도 깊고 두텁게 쌓였다. 단순 하청공사만 묵묵히 수행하던 무명의 업체들이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플랜트 경쟁력을 무기로 중동 플랜트 시장을 주름잡는 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일반적인 건축ㆍ토목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플랜트 수주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건설업체들의 수익성 제고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8월11일까지 해외건설 수주액 107억8,700만여달러 중 플랜트는 71억8,600만여달러로 약 67%의 비중을 차지했다. 플랜트의 비중이 20~30%대에 머물렀던 90년대 중반의 황금기와 비교해도 괄목할 만한 수치다. 서종대 건설교통부 건설선진화본부장은 “해외건설 실적만 보면 지난 83년과 2005년이 100억달러 정도로 비슷했지만 당시 17만명에 달했던 파견 근로자는 불과 2% 수준인 3,500명으로 줄었다”며 “플랜트 건설의 부가가치가 얼마나 높은 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해외건설의 패턴이 수주에 급급한 ‘양(量)’ 위주에서 수익성 높은 사업만 선별해 수주하는 ‘질(質)’ 우선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97년말 한반도를 강타했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였다. 국가 신용도가 바닥으로 추락하자 자금 조달길이 막힌 해외 주택개발 분야부터 고꾸라졌고, 현대ㆍ대우건설 등 막대한 달러를 벌어오던 대표적 건설업체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헤쳐나오기 위한 유일한 길은 무분별한 수주를 자제하고 수익성 높은 사업을 선별해내는 것이었다. 김종현 해외건설협회 기획관리실장은 “IMF 위기 이후 채권단이 나서 수익성 분석을 강화하고 수출입은행과 해외건설협회 등의 보증ㆍ사업성 평가가 까다로워지면서 해외건설의 체질도 자연스럽게 양에서 질로 바뀔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호황의 밑바탕은 국내 건설업체들의 ‘플랜트 EPC’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왔다는 점이다. 플랜트 EPC는 설계(Engineering)와 구매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을 일괄적으로 수행하는 종합 사업. 단순 시공이 아니라 상세설계와 기자재 조달까지 도맡아 하는 만큼 기술력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부가가치도 높다. 그래서 이재헌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플랜트 EPC를 “공장을 짓는 지식의 덩어리”라는 의미에서 ‘플랜트 콘텐츠’라고 부른다. 김석만 대림산업 플랜트사업본부 상무는 “우리의 EPC 능력은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다”며 “EPC가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세계의 변방에 머물던 국내 기자재 산업의 수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현 실장도 “플랜트 공기를 단축하는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세계 최단기간 준공이 가능하다”며 “기본설계와 기자재 분야는 아직 미흡하지만 플랜트 상세설계와 시공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플랜트 비중이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동시에 IMF 이후 크게 위축됐던 투자개발형 사업도 신도시, 주택개발, 사회기반시설(SOC) 등의 분야의 진출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중동에 집중된 플랜트와 달리 중국, 동남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사업지역도 다변화되는 중이다. 이미 베트남에서 대우건설 컨소시엄과 GS건설이 각각 하노이ㆍ호치민 지역 신도시 건설을 구체화했고, 동일하이빌ㆍ우림건설ㆍ신일ㆍ대원ㆍ반도건설ㆍ성원건설ㆍ삼부토건ㆍ월드건설 등 중견업체들의 해외 주택사업 진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여유자금 풍부 중견업체 해외 주택시장 진출 활발
中등서 아파트 분양·베트남 신도시 개발권 획득
요즘 해외건설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투자개발형' 사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플랜트는 물론 건축ㆍ토목 분야 역시 자금력이 튼튼하고 대외신인도도 높은 대형업체 위주로 이뤄져 왔지만 최근 들어 중견업체들의 해외 주택시장 러시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IMF 외환위기를 고비로 사실상 맥이 끊겼던 해외 주택사업이 풍부해진 국내 여유자금을 등에 업고 중국과 베트남, 중동, 카자흐스탄, 아프리카 등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데다 최근 해외 주택투자가 100만달러 한도에서 자유화된 데 따른 투자 열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대우건설, 코오롱건설, 경남기업, 동일토건, 대원 등 5개사는 무려 8년간의 준비 끝에 올초 10억달러 규모의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개발계획을 승인 받았다. GS건설은 베트남 호치민 지역에서 대규모 신도시 건설을 추진 중이고 포스코건설은 하노이 외곽 고속도로를 건설해 주는 대가로 신도시 개발권을 획득했다. 중견업체 중에서는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동일하이빌이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1단계로 383가구의 아파트를 성공적으로 분양한 데 이어 오는 2010년까지 총 3,000여가구를 짓는 10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림건설은 중국 쿤산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대규모 아파트 분양을 추진 중이고 신일은 상하이에서 38층 높이의 복합건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반도건설과 성원건설, 삼부토건 등은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한국형 주상복합과 아파트를 짓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가시화될 3~4년 후에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낯익은 브랜드를 단 '한류 아파트'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우림건설 김종욱 문화홍보실 상무는 "건설사가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었던 90년대와 달리 지금은 금융ㆍ정부 지원이 활발하고 교역여건이 이미 갖춰져 있어 해외에서 주택사업을 하기가 한결 수월하다"며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곳 위주로 서두르지 않고 영역을 확대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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