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EU의 배출가스 규제

깔끔한 사람이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가족과 같이 산다면 짜증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해 유럽연합(EU)과 다른 국가들이 겪는 갈등은 이와 비슷하다. EU는 배출가스를 규제하지 않는 나라들에 분개해 강제로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저분한 집안에서 혼자만 유독 깔끔을 떨며 가족들에게 벌금을 내라고 강요한다면 원성을 살 뿐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EU가 대기오염에는 신경 쓰지 않는 다른 나라들에 짜증이 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우선 대기오염과 관련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EU 기업들은 대외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EU의 일방적인 제재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미국ㆍ중국ㆍ인도 등과 같이 이산화탄소 감축을 의무화하는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들이 집단 반발한다면 EU는 백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EU는 거대한 연합체이지만 자신의 의도를 전세계 국가들에 관철시키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EU 내부에서도 배출가스를 규제하기 위해 이른바 ‘탄소세’를 물리는 방안에 일치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 미국 경제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독일과 같은 나라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또 세계무역기구(WTO)도 EU의 이런 세금에 대해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물론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들에 대해 어떠한 제재 조치도 취하면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프레온가스를 규제하는 몬트리올의정서에 가입한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 무역 규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허용됐었다. 이런 규제는 다른 국가들의 ‘무임 승차’를 방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EU는 역내 국가들에 한해서만 제재를 취해야 한다. 현재의 교토의정서는 몬트리올의 오존 협정과는 달리 강력한 제재를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세계의 지지를 받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EU는 우선 내부적인 배출가스 규제에 나서면서 교토의정서 미서명 국가들에 대해서는 설득 작업을 벌이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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