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후 제2의 경제 위기가 온다는 루머가 폭넓게 확산돼 왔다. 게다가 뉴욕증시의 나스닥 지수가 한달 사이에 최고치의 25%나 폭락하면서 동조화 경향이 높은 한국 증시도 급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한은이 인위적인 냄새까지 풍기며 유지했던 저금리 기조도 선진국의 금리 인상 압박, 경기 과열에 따른 기업들의 자금 수요 폭증등으로 더이상 붙잡아맬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제2위기설은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느슨해지고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공격하면서 사용함으로써 불거졌다. 여기에다 돈의 생리를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채업자들이 제2 위기설을 믿고 벌써 증시에서 손을 빼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채업자들은 남미 외환위기 국가들이 한결같이 위기 3년차에 또다시 경제 위기에 빠졌다는 전례를 들어 한국 경제도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으로 살아난지 3년째인 금년을 무사히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돈의 은신처를 찾고 있다.
과천의 정부부처는 경제 기초여건이 건실하고 보유외환이 넉넉하기 때문에 제2의 위기가 올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경제관료들과 전문가들은 총선후에 경제 개혁의 고삐가 느슨해지거나, 과열로 치닫고 있는 경기를 연착륙시키지 않을 경우 큰일이 날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제2위기설의 배경=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미봉책으로 막아두었던 경제악재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는 논리다. 공공 요금이 올라 물가가 불안해지고, 저금리 기조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경기 과열에다 원화 강세기조가 지속되면서 수입이 늘어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선거를 의식해 미루어 왔던 금융권에 대한 제2차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또 한차례 금융불안이 불가피 할 것이란 지적이다.
또 정부가 은행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64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공적자금 마련을 위한 채권의 만기가 돌아와 정부의 금융부담이 커지고, 재정적자가 커지게 된다. 여기에다 총선후 정치불안이 가중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증시에서 빠져나갈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남미의 사례=멕시코는 5년 주기로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외채 위기를 맞는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95년 대선직후에 페소화 폭락을 겪었다. 3차년도인 98년에 경기가 회복되었으나 은행 부실은 가중되어 지난해에 600억 달러나 되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80년대에 두차례 이상의 모라토리엄(채무 불이행)을 겪었으면서, 1,00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브라질의 경우 98년말 대선직후 외국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지난해초 헤알화를 절하하는 비극을 맞았다.
◇정부 입장 =정부는 멕시코와 같은 외환 위기의 반복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의 보유외환이 8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그동안 단기 외채비중을 줄였기 때문에 3년전과 같은 단기유성자금 썰물 현상이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총선후 긴축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물가 상승율이 2.5%에 불과하므로 아직 금리상승 압박이 약하다는 주장이다.
정정 불안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빠져나갈 것이라는 시각에도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증권회사들은 「팔자」에서 「사자」로 돌아서고 있다고 한다. 대만의 경우 총통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갔으나, 선거후에 다시 유입된 경험이 있다. IMF는 지난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위기를 겪은 국가중에서 가장 강한 회복세를 보였으며, 올해 성장률을 5.5%에서 7.0%로 상향조정했다.
적어도 거시지표 상으로 우리경제가 선거후 제2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재발되고 있는 금융부실을 비롯해 구조조정의 고삐를 당기지 않을 경우 제2 위기설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김인영기자INKIM@SED.CO.KR
입력시간 2000/04/13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