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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용 기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중장기 플랜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기업들 사이에서는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도 안 된 마당에 의욕만 앞선 정책 추진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정년 60세 제도가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한 직장 내에서의 고용 연장만을 고집하기보다 '전직 지원'이나 '생애 설계 서비스' 등의 프로그램도 활발히 시행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년 60세 시행 대기업 32% 불과…임금피크제도 지지부진=고용 연장과 관련해 현재 정부는 일본의 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한국과 일본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1998년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 이미 관련 제도를 도입한 기업의 비율이 93.3%에 달했다. 일본 정부가 정년연장 관련 법제화(1994년) 이후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두고 인사 적체로 인한 신규 채용 감소, 기업의 활력 상실, 인건비 부담 가중 등 예상할 수 있는 갖가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2014년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 중 정년 60세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32.2%에 불과한 실정이다. 상당수의 회사들이 당장 내년부터 법적 의무에 따라 떠밀리듯 정년연장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줄여나가는 임금피크제는 갑작스러운 정년연장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피크제 도입 비율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기업은 18.0%에 불과한 상황이다.
더욱이 정년연장이 본격 시행되는 내년 이후에도 노사 간 의견 불일치로 임금피크제 도입 비율이 가파르게 올라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 기업들이 골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
국회가 2013년 당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구만 명시했을 뿐 임금체계 개편 불이행 시의 처벌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되면 기업 구성원의 퇴직과 승진이 원활히 이뤄지기 힘들고 기존 근로자의 사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용 연장을 추진하면 다양한 문제점이 쏟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퇴직-연금 수급 연계 필요"=이 같은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3차 장년고용촉진기본계획을 통해 '65세 고용 연장'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유럽과 같은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장기적으로 회사 퇴직과 국민연금 수급 시기가 연계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1세이지만 2018년 62세, 2023년 63세, 2028년 64세, 2033년 65세 등으로 올라간다.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데 정년퇴직 이후부터 연금을 받기까지 공백기가 길어지면 '노인 빈곤층' 양산을 막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 등 강성노조 목소리에도 힘 실릴 듯=정부가 '65세 고용연장' 방안을 강행하면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적인 강성노조의 줄기찬 요구에도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정년 60세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현대차 노조는 매년 임금단체협상 때마다 "단계적으로 정년을 65세로 늘려달라"고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현대차 노조의 요구 역시 정부와 유사한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퇴직과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연계해 고령인구가 직장을 떠난 후에도 무리 없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