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5일] 라플라스


‘뉴턴이 개척한 길을 완전한 포장도로로 만든 사람.’ 프랑스의 과학자 라플라스(Pierre Laplace)에 대한 평가다. ‘프랑스판 뉴턴’으로 불릴 만큼 천체역학과 물리학에 업적을 남겼으며 확률이론과 통계학의 지평을 넓혔지만 변절자의 상징으로도 꼽히는 인물이다. 1749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이웃의 재정적 후원으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졸업 이후 교수로 자리잡았다. 끊임없이 신분상승을 꾀하던 그는 루이 16세 눈에 들어 왕실 포병대의 검사관 직위를 따냈다. 고액연봉이 보장되던 검사관 자리에서 프랑스 대혁명을 맞은 그는 ‘왕정을 혐오하는 공화주의자’로 변모해 잇따라 중책을 맡았다. 사회개혁을 위해 정확한 인구통계가 필요했을 때 적은 수의 표본을 이용해 총인구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고안하고 미터법을 도입한 도량형위원회에서도 일했다.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황제파’로 변신한 그는 백작 작위를 하사 받고 6주 만에 단명했지만 내무장관에도 발탁됐다. 자료만 충분하다면 별자리 운행을 예측하듯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며 ‘신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호언한 게 이 무렵이다. 미래는 미리 결정된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20세기 들어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지만 무한한 자료와 고도의 계산능력을 지닌 초지성체는 요즘도 ‘라플라스의 악마’로 불린다. 전자회로에 쓰이는 산식도 기본적으로 라플라스 방정식이다. 왕정복고 후에도 살아남은 그는 오히려 후작으로 승작하는 영예를 누리다 1827년 3월5일 78세로 죽었다. ‘확률분석이론(1812년)’과 요즘도 교과서로 활용되는 ‘천체역학(전5권ㆍ1799~1825)’이라는 업적에도 그에게는 기회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떠나지 않는다. ‘실용적 철새’라는 면모가 과학적 위업을 가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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