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유업계 품질·서비스 차별화 경쟁/유가자유화 한달

◎소비자들 ‘좀 더 싼곳 찾기’ 구매패턴 변화조짐/주유소 이익감소 보전 경정비 등 유외사업도유가자유화 실시 한달. 국내 정유시장에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통제와 원유가 연동제를 축으로 「관리체제」아래 있던 정유시장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자유화·개방화를 위한 한 발을 내딛게 됐다. 유가 자유화는 지난해 개정된 석유사업법에 의해 공장도 가격은 물론 대리점과 일선 주유소의 소매가격 등 가격전반을 업계 자율로 결정토록 한 것. 그야말로 가격을 시장 수급상황에 맞춰 기업 스스로가 결정토록 하는 제도다. 유가 자유화 이후 나타난 첫번째 변화는 주유소마다 설치된 가격표다. 가격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주유소 안쪽벽에 작은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주유소마다 값이 모두 같으므로 강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의 주유소 마다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가격표시판이 운전자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이 가격표를 보고 소비자들은 값싼 곳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정부는 가격표시판을 운전자들이 보이는 곳에 설치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그 모습이 국내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화 실시후 처음 실시된 자율적인 가격결정에서 (주)유공, LG칼텍스정유, 쌍용정유, 한화에너지, 현대정유 등 정유 5사는 휘발유값을 8백28∼8백29원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선 대리점의 가격은 지역별로 큰 편차를 나타냈다. 이 가운데 쌍용정유의 전국 1백10여 직영대리점들은 다른 곳보다 7∼8원 정도가 싼 8백21원으로 낮추어 받았다. 이 가격은 지난해까지 적용했던 유가연동제에 따른 가격인상분만을 반영한 것으로 공장도 마진과 유통마진 현실화분으로 책정한 7∼8원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쌍용의 이같은 차별화 움직임은 유가자유화 실시후 후발업체를 중심으로 정유업계의 가격경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 서울 도곡동, 세곡동 등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유소에서는 평균치보다 23∼24원 높은 8백52원까지 치솟은 적도 있다. 이들 주유소는 교통체증 등으로 인한 물류비 증가와 지역적인 특성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물가를 우려한 정부의 강력한 제지를 받아 최근에는 ℓ당 3∼6원 정도 비싼 8백32∼8백35원선으로 판매가격을 낮추었다. 이처럼 유가 자유화는 지역이나 도소매업체들의 판매정책에 따라 값이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유소를 가리지 않고 가까운 곳을 찾았던 과거의 구매패턴에서 조금이라도 값이 싼 곳이나 서비스가 좋은 곳을 선택하는 새로운 형태로 전환될 것이란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같은 소비자 구매패턴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기업들의 경영체제를 바꾸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대응해 기업들은 과거의 앉아서 팔던 시대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서비스와 품질의 차별화 경쟁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유공, LG, 쌍용, 한화, 현대 등 정유업계는 이미 가격 자유화에 대비해 지난해부터 이미지광고와 함께 본격적인 차별화 경쟁에 나서고 있다. 정유업계는 품질 차별화를 위해 브랜드의 도입과 함께 청정제 등을 첨가해 휘발유의 고급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현대와 LG칼텍스정유의 경우 계열 판매회사의 통폐합을 통해 생산과 판매의 일체화를 단행하는 등 유통조직을 대폭 정비했으며 유공, 한화에너지 등은 스텝조직을 슬림화해 고객밀착형 조직구조로 바꾸는 등 영업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함께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대비해 계열주유소의 직원들을 대상으로한 서비스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광고 및 판촉전략도 강도높게 전개하고 있다. 업계는 특히 가격경쟁에 따른 주유소의 이익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휘발유 외에 편의점, 경정비, 세차 등 유외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유외사업을 통해 휘발유의 가격경쟁으로 인한 마진을 보전하는 것은 물론 고객에게 일괄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만족 경영을 동시에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대다수 소비자들이 유가자유화를 피부로 체험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다. 석유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가자유화에 따른 초기 시장의 혼란과 물가안정을 이유로 석유류 가격에 대한 신고제를 당분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유업체들로부터 유가의 사전신고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정유업체들은 지역별, 대리점·주유소별로 석유류의 가격 차별화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환차손과 원유도입비 등으로 적지않은 손실을 입은 정유업체들은 가격 자유화를 계기로 마진의 현실화를 꾀할 계획이었으나 이것 역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가격 신고제에서는 값을 내릴 경우는 무방하지만 올릴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유·무형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난 연말부터 단행된 정부의 고유가 정책도 가격자유화 정책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해말 휘발유와 등·경유에 대해 교통세와 특소세를 20%씩 인상했다. 이에따라 휘발유의 경우 ℓ당 6백원선이던 것을 8백원대로 올려 놓았다. 이 조치로 정유업계의 가격 차별화는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됐다. ℓ당 2백원 이상 값이 오른 상태에서 소폭의 가격 차별화를 기하는 것은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가격 신고제와 고유가 정책이 유가 자유화에 의해 소비자 몫으로 돌아가야 할 혜택들을 앗아가버린 결과가 된 셈이다. 업계는 이에따라 국내 정유시장의 가격자유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초기의 혼란을 감수하고라도 정부의 과감한 규제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유가 자유화 실시를 계기로 일부 지역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업계간 담합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격 산정기준의 마련 등 자유화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가 자유화는 정체된 정유시장에 경쟁의 원리를 도입해 경쟁을 촉진하고 업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활력소인 점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는게 업계의 주장이다.<민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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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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