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월요초대석] 권기홍 노동부 장관

“지금까지의 `물적자본중심`경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동북아물류 중심국으로 나아가려면 사람, 인적자본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려면 인적자원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사회정책 3가지를 통합해야 합니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이제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인적자원의 개발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노동ㆍ사회정책을 기존의 경제정책과 동등한 가치를 두고 접근, 통합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장관은 또 “노동부가 노동자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지 않으면 누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겠냐”고 반문하고 “노동자의 근로조건ㆍ실업문제ㆍ노동문제 등을 가장 먼저 챙기는 부처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장관에 취임하신 지 100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학자로 계시다가 장관으로서 관료생활을 하시고 계신데 그간의 소회를 말씀해 주십시오. ▲노동부 조직은 생각했던 것보다 다이나믹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참여정부의 출범 자체가 `변화`를 의미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단 노동계뿐만 아니라 사회각계 각층에서 변화에 대한 기대가 분출, 장기적으로는 발전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각자가 자기에게만 유리한 변화로만 해석해 정제되지 못하는 등 기대가 있어 이를 한꺼번에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원화사회로 이동하면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는 나름대로의 채널을 찾아서 갈등을 해소해야 할 역사적인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관님께서는 최근에 “(노동계가) 불법이더라도 주장이 정당하면 들어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요. ▲그런 말을 했던 게 사실입니다. 사회갈등, 좁혀서 노사갈등에 대해 `정부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 저는 3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대화, 두 번째는 정부가 할 일은 한다, 세 번째 불법은 원칙에 의해서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노사갈등이 발생하면 이 3가지 원칙이 단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파업발생시 `대화를 하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라든지 `파업을 풀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단계론으로는 사회통합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불법으로 파업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정당한 요구를 하면 불법 행위는 원칙대로 처리하되 `주장의 정당성`은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논의를 해서 만약 정부가 모르고 소홀히 한 사안이 있으면 이를 수용, 개선해야 합니다. 요컨대 불법은 불법대로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제기된 사안의 정당성은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왜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노조에 편향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장관님께서 최근에 “노동부는 노동자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친 노조 정부`라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내에서 토론이 있을 때 산자부의 주 관심사는 기업의 이익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인데 노동부의 주 관심사도 똑 같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지요. `노동정책적 시각`에서 근로자의 근로조건ㆍ실업문제ㆍ노동문제 등을 가장 먼저 챙기는 게 노동부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특정 사회집단 세력에 서 있어서는 안되지만 부처간 토론에 있어서는 노동부는 당연히 노동자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해야 합니다. 노동부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누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합니까. 저는 취임사에서도 이미 이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어떻게 되어도 좋다`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노동부는 노동정책적 시각에서 주장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노조의 대변인이 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려면 제가 왜 노동부 장관을 합니까. 노조 위원장을 하지요.(웃음) -취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노동부가 주무부서가 돼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정책, 예를 들어 퇴직연금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데 노동자의 입장만을 편향적으로 반영한 나머지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등 오히려 갈등이 조장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법안을 하나 만들려면 관련 부처간에 수십 차례에 걸쳐 회의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각 부처간에 의견 개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그러다 보면 균형을 잡아갈 것이라고 봅니다. 논의를 하는 과정 중에는 부처간에 처한 입장이 달라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걸 가지고 비판을 해서는 안됩니다. 논의가 끝나고 정부 정책이 최종적으로 결정이 된 상황에서 그것이 `친노동적`이거나 `친기업적`이라면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줬던 노동정책과는 다른 것 같은데요. 이전의 노동정책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차이가 있다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경제정책과 노동정책간의 관계 자체를 종속적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통합적으로 볼 것이냐의 차이가 있겠죠.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은 물적자본력을 동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경제정책은 금리, 조세, 산업구조 등이 중심이 되는 `물적자본중심`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물적자본중심 경제정책만으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선진국, 동북아 중심국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고리는 사람입니다. 인적자본의 동원 없이는 질적인 도약이 불가능합니다. 인적자원정책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노동정책은 통합되어야 합니다. 경제정책은 우선시하고 노동정책은 종속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 세 가지가 통합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새로운 경제정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노동정책을 경제정책에 우선해서 추진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장관님께서 ILO, OECD 등 국제기구에서 후진적이라고 지적한 노사관계 법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고치실 계획입니까. ▲구체적 사안은 지난 달 10일에 발족한 `노사관계제도 선진화 연구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지만 노사에 유ㆍ불리를 떠나서 국제기준에 미흡한 노사관계 법ㆍ제도를 정비할 것입니다. 먼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단결권ㆍ교섭권 및 노사협의제도, 단체행동ㆍ분쟁조정, 근로기준법제 등으로 올해 10월말까지 제도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또 개별노사관계에서 사용자측에서 주장하는 `노동자 과보호`조항인 직장폐쇄, 대체근로 등을 일부 개선할 것입니다. -지난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정부가 형평성에 어긋나게 경유세 인하를 허용함으로써 택시ㆍ버스ㆍ레미콘 등이 파업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또 경유세 인하를 주장하고 나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노동부 장관이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정당성을 파악할 정부 당사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른 주무부처가 판단할 문제지요. 다만 택시ㆍ버스 등은 화물연대에 비해 지금까지 정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ㆍ사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해 주시죠. ▲정부가 잘못한 것은 앞으로 적극적으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노ㆍ사ㆍ언론 등이 사실 자체를 왜곡하면 사회를 더 불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노ㆍ사ㆍ언론 등이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고 정부와 함께 갈등 해소의 장으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 발자취 : `유럽식 사회정책` 전문가, 소득재분배등 조예 깊어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대학에서 사회정책 분야 등 연구 활동에 전념해 온 전형적인 학자 출신이다.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식 사회정책`의 전문가로서 소득 재분배 등에 조회가 깊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여한 대구사회연구소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9월 교수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인 정치개혁시민연대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또 대선 때는 민주당 대구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대구지역 선거운동 사령탑으로 활동했다. 인수위 때는 사회ㆍ문화ㆍ여성분과 간사를 맡아 노무현정부의 노동정책을 가다듬었다. 장관이 되기 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학자출신이 과연 장관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있었지만 탄탄하게 다져진 논리로 노동부를 잘 이끌어 가고 있다는 평이다. 최근에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친 노동자 정책`이라며 언론의 공세를 받고 있지만 “노동부는 당연히 노동자의 권리를 반영하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이지만 그간 사용자에게 다소 기우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는 노동부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굳어보인다. “관료적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신선함을 유지하겠다”는 권 장관의 새로운 시도가 어떻게 현실로 나타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구출생(54) ▲경북고, 서울대 독문과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박사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영남대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대구시 선거대책본부장 ▲인수위 사회ㆍ문화ㆍ여성분과위원회 간사 ■ 내가 본 이 사람 김태일(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노동문제를 전공한 경제학자가 노동부장관을 맡은 것은 `자연스러운`일일까? 내가 보기에 두 직종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교수직의 덕목이 모순적 요소를 드러내는 데 있다면 장관직의 덕목은 모순적 요소를 통일하는 데 있다. 장관에게는 결단이 중요한 덕목이지만 교수에게는 망설임이 덕목이다. “교수는 항상 두 개의 손(on one hand, on the other hand)을 `입에 달고 다닌다`”라는 서양 사람들의 우스개 소리는 교수직의 그런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나도 “교수에게 자문은 맡기되 결정을 맡기지 말라“고 말한다. 권기홍 `노동경제학 교수`가 `노동부 장관`역할도 잘 할 수 있을까? 장관은 짚신장수와 우산장수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처지일 텐데 곤혹스러운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여느 교수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교수였을 뿐 아니라 때를 놓치지 않고 판단하는 결단력 있는 교수였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이 지지부진 할 때 그에게 달려가곤 했다. 한 예술가의 성공은 십중팔구 개인적 감수성과 근면에 달려 있다. 노동경제학자의 성공 역시 `개인적` 재능과 성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부장관의 성공은 개인적 재능과 성실의 결과가 아니라 `집단적, 조직적` 노력의 산물이다. 이것이 또한 노동경제학자와 노동부장관의 다른 점이다. 나는 권기홍 장관이 노동부 전문가들의 능력을 신뢰하고 자기 조직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집단적 조직적`노력을 잘 수행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그는 우리의 인생이 `인정(recognition)을 위한 투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후배 교수들과 제자들을 존대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과 자질을 발휘하도록 배려하던 그의 따뜻한 성품이야말로 우리가 그를 리더로 생각해온 이유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눈이 맞아 연구실을 떠난 권기홍 장관. 그는 지금 노동부 전문가들과 배짱이 맞아 즐거운 모양이다. 조금 샘이 나지만 나로서도 기쁜 일이다. <대담: 윤종열 사회부장, 정리=전용호기자 chamgi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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