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서두름의 미학/어윤배 숭실대 총장(로터리)

우리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외국친구에게 우리나라 사람이나 기업의 특징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고, 무엇이든지 급히 빨리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단평이었다. 우리 기업과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었다.우리가 지니고 있는 「빨리 빨리 병」은 결국 부실공사와 연결되고, 이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천천히」「줄서기」「질서지키기」 운동을 전개하자고 한다. 좀더 차분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자녀에게 가르친 기본적인 덕목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빨리 빨리 병」은 고치고 볼 일이다. 알프스자락의 매우 쾌적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일이 있다. 지배인이 안내하는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한쪽 구석에 동양풍의 여학생 한명이 다소곳이 앉아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궁금해진 우리들은 지배인에게 그 학생이 앉아 있는 이유를 물었다. 지배인의 대답에 의하면 그 여학생은 홍콩호텔학교에서 온 실습생인데 많은 그릇과 음식을 너무 빨리 손님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급히 다니기 때문에 식당 분위기를 흐려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종업원들이 여유를 가지고 손님을 접대함으로써 형성되는 아늑함과 쾌적함을 교육시키기 위해 하루종일 테이블에 앉혀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저녁 그 식당에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 역전 관광안내소 앞에서 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 줄을 섰다. 안내원이 길을 알려주는데 소요된 시간은 불과 일분도 되지 않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린 시간은 삼십육분이었다. 천천히, 줄서기, 질서라는 언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유럽의 국가들은 그래서 살기좋은 나라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유럽의 이러한 틀에 박힌 듯한 질서 속에는 생동감이 없음을 느꼈다. 유럽의 질서 속에는 석양의 쓸쓸함과 정적인 어둠이 동시에 깔려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나는 무기력증을 느끼기까지 했다. 「날림」「부실」「대충」「눈가림」이라는 단어가 한국인의 삶과 기업현장에서 사라져야 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유럽인들처럼 한끼 식사를 위해 식당에서 장시간 머무를 수는 없고 길을 묻는데 한시간을 허비할 여유도 없다. 우리는 저물어가는 석양이 아니라 힘차게 솟아오르는 아침해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서두름의 정신을 긍정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생산환경이 좋지 않다고 게으름을 피울 것이 아니라 서둘러 보다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야 한다. 불황을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우리의 서두름이 몰고 오는 역동성에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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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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