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내 생산공정의 일부를 하청업체에 도급했더라도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하청 근로자를 지휘·감독했다면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위장도급의 직접 고용관계를 인정한 사실상의 첫 대법원 판결이어서 국내 산업계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위장도급 관행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현대미포조선의 사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의 근로자 30명이 “종업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원고승소취지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대법원은 “현대미포조선은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들의 채용 여부를 결정하고 승진대상자 명단을 통보하는 등 근로자들의 채용·승진·징계뿐 아니라 출근·휴가·연장근무·근무태도 등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다”며 “이러한 점에 비춰 현대미포조선은 근로자들을 직접 지휘ㆍ감독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용인기업이 비록 사업자로 등록돼 있고 소속 근로자에 대한 소득신고 등의 사무를 처리한 점은 인정되나 사실상 독자적인 사업시설을 갖추지 못했고 대부분의 업무가 현대미포조선이 제공한 사무실에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용인기업은 현대미포조선의 일개 사업부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1978년 설립된 용인기업은 25년간 현대미포조선에서 선박 부품의 검사·수리 등 사내 업무를 수행해 왔으나 현대미포조선이 선박건조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도급물량이 감소하자 2003년 1월 말 폐업했다.
이에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 30명은 "현대미포조선이 사실상 고용주로서 지휘감독을 행사했다”며 종업원지위확인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 패소했다.
이번 판결은 현대중공업ㆍ한국마사회ㆍ㈜SK 등에 소속된 협력·용역업체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유사 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주노총은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비정규직법 시행 후 갈수록 증가하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향상할 수 있는 의미있는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