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GOP 총기 사고 '고성' 가보니

음식점·택시 손님 발길 끊겨 주민 한숨

軍 피로도 한계 달해 … 사기 북돋아줘야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 인근 야산에서 임 병장이 자살을 시도했던 자리(왼쪽 사진). 임 병장의 어깨와 가슴 사이를 뚫었던 총알의 흔적이 소나무에도 패어 있다. /사진제공=디펜스21+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 인근 야산에서 임 병장이 자살을 시도했던 자리(왼쪽 사진). 임 병장의 어깨와 가슴 사이를 뚫었던 총알의 흔적이 소나무에도 패어 있다. /사진제공=디펜스21+

사고 6일 전 휴가 병사 추락사…부대 전체 스트레스 강도 커져

22사단은 해안경비까지 맡아… 장병들 업무 중압감에 시달려


군청 위기대응 매뉴얼 아예 없어… 주민 "우리가 GOP 지켜야 하나"

'사고요, 끔찍하지만 더 터질 것 같아 걱정돼요. 지칠 대로 지쳐서…, 병사고 간부고 다 안됐지요 뭐….'(간성읍 택시기사).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고를 현장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찾아온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중심지인 터미널 주변은 썰렁한 기운만 감돌았다. 다른 택시기사는 "금요일 밤은 부대로 복귀하려는 간부들의 콜이 끊이지 않았는데 세월호 참사에 속초 사건이 덮친 데 이어 총기 사고까지 겹쳤으니 음식점이든 택시든 한동안 손님 찾기가 힘들다"며 한숨지었다. 주말 내내 장병들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간성읍은 사람은 없고 가로등만 지키는 무인 도시 같았다.


◇긴장과 피로도 누적시킨 '속초 사건'=택시기사가 말한 '속초 사건'의 개요는 '휴가 나온 병사의 추락사 사건'. 현지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뤘을 뿐 중앙 언론에서는 작게 취급한 이 사건을 속초와 고성군 주민들은 남달리 여겼다. 속초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고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속초 사건 희생자인 김 모 병장은 22사단 포병부대 소속으로 제대를 한 달 앞두고 포상휴가를 받아 고향인 속초에서 술을 마시던 중 옆자리의 간부 3명과 시비가 발단이 돼 지난 15일 목숨을 잃었다. 고향 선배인 업소 주인은 후배인 김 모 병장을 폭행하고 도주하던 김 병장은 얼마 뒤 시체로 발견됐다. 가족과 헤어진 지 불과 두 시간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김 병장의 사인은 추락사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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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사건 이후 소속 부대는 속초시에 대한 외출·외박 금지령을 내렸다. 해당 부대로서는 당연한 조치다. 소속 병사들의 안위에 위협을 가하는 분위기라면 출입통제령을 발동해 병사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속초 사건의 충격이 전체적인 피로도를 누적시켰다는 점. 연초부터 북한의 3차 핵실험, 3월 90여발의 각종 미사일 발사, 4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과 세월호 참사로 비상 대기 상태를 유지해온 마당에 발생한 속초 사건은 부대 전체의 긴장과 스트레스의 강도를 높여놓았다. 그리고 6일 뒤인 21일 밤 임 병장의 총기 난사 사고가 터졌다.

◇업무 중압감에 눌린 22사단='다른 부대들도 마찬가지일까'라는 질문을 주말 현지취재에 동행해준 군사전문지 '디펜스21+' 문형철 기자에게 던졌더니 "전군이 피로에 절어 있기는 비슷할 것"이라면서도 "22사단의 경우는 특별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22사단에서 근무하며 소대장과 중대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대위인 그는 "보통 전방 사단은 예비연대를 보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22사단은 전군에서 유일하게 해안경비까지 맡아 평소에도 근무 강도가 가장 높은 사단"이라며 "대형 산불도 빈발하고 폭설도 심해 고충이 많다"고 말했다. 최북단 남한영토인 통일 전망대에서 지도를 펴놓고 대조해본 22사단의 경계 영역은 넓고도 넓었다. 동해와 금강산이 지척이어서 군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고위급 인사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다는 71X 관측소와 김일성 별장이 있었던 화진포에서의 '의전'도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다. 간성읍 부근에 주둔한 대대의 경우 전방 근무를 이달 초에 교대하고 후방지역에 내려왔지만 외출·외박을 엄격히 통제 받고 있다. 부대가 후방으로 내려오면 줄서기 마련인 면회객도 간성읍을 통틀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교전과 생포지역 주민은 불안하다=무장 탈영한 임 병장의 추격부대 소대장이 22일 관통상을 입은 지역과 임 병장이 23일 자살기도 후 생포된 장소는 승용차로 7~8분 거리였으나 공통점이 있었다. 민가와 가까웠다는 점이다. 군 수사대가 70여발의 탄피를 수거한 것으로 알려진 교전지역의 민가 컨테이너에는 총탄에 의해 구멍 2개 뚫렸다. 자살 시도 지역에서도 임 병장의 가슴과 어깨를 뚫고 나온 총알이 소나무를 스치고 나간 듯한 흔적이 남았다. 민가 지근거리의 총탄 흔적은 자칫 민간 살상자가 나올 수 있는 점을 말해주는 것. 그러나 군과 군청이 민간인 안전에 만전을 기했는지는 의문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차단선을 설정할 때 대피 안내도 늦었고 4개 마을 주민을 대피시킨 군청은 음식과 음료수·모포 등을 적시적량 제공하지 못한 채 책임 소재만 가려 이에 반발한 일부 마을 주민들은 '위험해도 차라리 집이 낫다'며 임 병장 생포 이전에 마을로 되돌아갔다. 가장 위험한 전방 지역에서 군청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직접 인터뷰한 4개 마을 전·현직 이장들은 '대피시설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이하게도 2개 마을 이장들은 "이번 사건은 병사들의 자질이나 군 지휘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문제로 발생했다"며 "이스라엘의 민병대처럼 마을 주민들이 GOP(일반전초) 근무를 분담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풀어주지 않으면 사고 재발할 수도=간성읍과 사단본부, 신교대와 속초시에서 22사단 부대 마크를 부착한 군복의 군인들은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말을 걸어도 응하지 않았다. 간혹 보이는 사복 차림의 간부들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야간에 시내 지역에서 감시하는 듯한 단위부대급 순찰 지프는 주기적으로 돌아다녔다. 어렵게 입을 연 한 장교는 "사단 감찰이 간부들의 집집을 돌며 영내 근무 여부를 이중 확인했던 세월호 참사 직후보다는 낫다"며 "병사든 간부든 젊기 때문에 영내에서도 휴식과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고성=권홍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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