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또 일본에 질 텐가

며칠 전 한 대학교 주최로 일본의 젊은 의원들을 만나 하루 종일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 국회도 일본 국회도 바쁜 상황이지만 워낙 악화된 두 나라 관계를 걱정하는 젊은 의원들이 만사를 제치고 시간을 냈다. 토론회의 주제는 ‘미래 한일 관계’였다. 언제나 과거에 얽매여 이야기하다 보면 미래를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 한일 관계의 숙명을 한번 깨보자는 모임이었다.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는 하루 종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내가 놀란 것은 일본의 변화, 또 변화를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였다. 우선 눈에 띄게 달리진 것은 젊은 의원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최연소인 29살의 와시오 의원 등 20대 의원까지 주로 30대 초중반으로, 전과 달리 ‘젊은 세대’의 의회 진입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커피 브레이크 때 슬쩍 물어보았다. “아버님이 혹시 의원이었느냐.” 전 같으면 99%가 “네, 그렇습니다. 선친께서 갑자기 작고하시는 바람에…” 하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날 만난 의원들은 달랐다. “공인회계사를 하다가 일본을 바꿔보고 싶어서…”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정치를 배웠습니다” “미국유학을 하면서 미국식 정치개혁을 일본에서도 실험해보고 싶어서…”. 즉 스스로 결단하고 노력하고 성취한 ‘당대의 정치인’이었다. 일본도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구나 싶었다. 게다가 그들 정치인의 이른바 국제화 수준도 상당했다. 영어도 아무런 불편 없이 구사했고 한국에 대해서는 편견도 없었고 오히려 어떤 기대나 동경, 친근감이 있었다. 그들은 ‘국제화 속의 새로운 일본’을 만들고 싶은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보다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경제였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을 장기 불황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지금 일본은 최장의 호경기에 도전하고 있다. 호경기 덕분에 이번 연말에 그럴듯한 레스토랑의 예약은 이미 지난 11월에 모조리 끝났을 정도다. 그러나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개방과 혁신’을 내걸고 맹렬하게 ‘경제 넘버원 일본’을 재현하고자 한다. 즉 동남아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 경제연대협정(EPA)을 적극적으로 체결해서 시장을 확대하고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적절한 한도의 정부 개입도 필요하다며 달려들고 있다. 즉 총리부터 젊은 초선 의원까지 지금 일본은 경제에 ‘올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기업인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시장을 지키고 선전하고 있는데 말이다. 자신이 임명했던 총리 등 온갖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느라 이 나라 대통령에게 ‘경제’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는 점-과거 한일 관계의 복사판 같다. 과거에 얽매이느라 ‘내일’이 실종됐던 한일 관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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