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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서울의 한 재개발조합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수용재결(소유주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토지 등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는 것) 뒤에도 해당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이 이주를 완강하게 거부해서다. 조합은 사업시행을 위해 해당 주민들에 대한 수용재결을 받은 뒤 보상금을 공탁했지만 주민들이 계속 이주를 거부해 결국 건물명도 소송을 제기해야만 했다.
재판의 쟁점은 '과연 명도청구가 수용재결을 통해 가능한가'였다. 피고들은 "수용재결에 의한 건물 명도청구는 행정대집행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민사소송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고의 대리인은 '물건은 행정대집행으로 할 수 있지만 사람은 행정대집행으로 곤란하다'는 내용의 일본 판례로 맞섰고 결국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 3건의 소송에서 모두 승소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당시 원고 승소를 이끈 이는 지철호 법무법인 조율 대표변호사였다. 수용재결을 받은 뒤 행정대집행이 아니 소송으로 명도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실무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법원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일본 판례와 논문 등을 뒤지며 꼼꼼하면서도 집요하게 대처한 지 대표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법무법인 조율은 지난 2002년 5명의 변호사로 시작한 법무법인 이지가 2008년 이름을 바꾼 부동산 전문 로펌이다. 현재 변호사 15명과 변리사 1명을 갖추고 있으며 10년 이상 부동산 사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조율'이라는 법인명에 담긴 뜻이 흥미롭다. '문제를 잘 조절한다'는 뜻의 조율(調律) 외에도 제사상에 놓이는 4가지의 기본 과일인 대추와 밤, 배, 감을 뜻하는 조율이시(棗栗梨枾)의 뜻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 대표는 "제사상에 대추와 밤을 먼저 놓는 이유는 두 가지가 모든 과일의 으뜸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며 "대추와 밤을 먹은 뒤 다른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는데 법을 잘 다루고 조화롭게 해석해 의뢰인을 어려움을 풀어주자는 뜻으로 조율로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조율은 재개발·재건축 사건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사건이 전체 수임 사건의 3분의 1 이상이다. 지 대표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동산 사건 비율이 줄어들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10~2012년에는 재개발·재건축 사건 비율이 전체 사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율은 설립 초기부터 재개발·재건축조합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부동산 전문 로펌으로 성장했다. 수용재결과 관련된 명도소송 외에도 2000년대 중반에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제49조 제6항)에 근거해 명도가 가능하다는 하급심 판례도 이끌어냈다.
이러한 경험을 발판으로 지 대표는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심사위원으로 부동산과 재개발·재건축 전문분야의 변호사 등록을 3년째 심사하고 있다. 2002년부터 3년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로 '부동산 사법' 과목을 강의하기도 했다. 한국생산성본부 재개발·재건축 강사와 SH공사 도시재생 자문위원, 중랑구청 도시계획 자문위원 등 각종 기관에서도 강의와 자문을 이어왔다.
지 대표를 도와 조율을 이끄는 신용진 변호사는 부동산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이은묵 변호사는 2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의정부에서 개업해 소유권확인, 특별조치법사건, 시효취득사건 등 부동산 사건을 많이 취급한 부동산 베테랑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는 경매펀드와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등을 운영하며 부동산사업시행에도 관여해 실무 전반에 다양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지 대표는 "부동산 사건은 전문 로펌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동산 사건의 경우 분야가 넓고 덩치가 큰데다 법률용어조차 생소해 경험이 없는 변호사는 사건처리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부동산 실문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전문 변호사를 갖추고 있어야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 대표는 "건설사건 역시 다른 사건보다 내용이 굉장히 복잡해 각종 법령과 판례에 정통해야 사건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 사건은 다른 분야보다 판례가 자주 바뀌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라는 게 지 대표의 지적이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판결이 조금씩 달라져 흐름 파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 대표는 "과거에는 (판결이)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다소 불리했지만 요즘에는 부동산 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조합에 호의적인 것 같다"며 "변호사는 공격도 하지만 방어도 하기 때문에 바뀌는 판례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