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백조의 노래

사람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에 약하다. 이 말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마지막 만남, 마지막 발언, 마지막 기회…. 평범한 말도 앞 자리에 ‘마지막’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무게가 달라지고 의미가 완전히 바뀐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면 다시 한번 주위를 돌아보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기업들이 마지막 세일을 외치는 것이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인 ‘유언’을 미리 쓰자는 운동도 ‘마지막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린스펀, 퇴임앞두고 '쓴소리' 특히 떠나는 사람은 마지막에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귀에 단 소리만 골라서 하게 된다. 이는 백조가 죽기 전에 단 한번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노래-‘백조의 노래(swan song)’-를 부르는 것과 비유된다. 그러나 모든 백조가 죽기 전에 꼭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백조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경제계에서는 그린스펀 의장이 퇴임을 앞두고 공식적으로 선 마지막 무대에서 당연히 좋은 말로 마무리를 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물론 그린스펀 의장의 공식 임기는 내년 1월 말까지로 아직 한 달여 남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임기 중 공식행사가 없다. 따라서 그린스펀 의장의 18년 철권통치(?)는 실질적으로는 G7 모임이 마지막이었다. 이 자리에서 G7 재무장관들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그린스펀 의장을 향해 ‘백조의 노래’를 목청 높여 불렀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그린스펀 의장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위해 봉사했다”고 치켜세웠고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그는 지난 18년간 G7 회의에 참가하며 깊은 통찰력과 애정으로 큰 기여를 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연합(EU) 중앙은행 총재는 “세계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머빈 킹 잉글랜드 은행 총재는 그린스펀을 경제위기에서 세계를 구한 골키퍼로 묘사한 그림을 선물했다. 그린스펀은 그러나 마지막 자리에서 끝내 ‘백조의 노래’를 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경상적자 축소에 실패하고 전세계적으로 보호주의 기조가 뿌리내릴 경우 세계경제가 ‘고통스러운’ 조정과정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경상적자는 외채증가와 이에 따른 이자비용을 확대하기 때문에 무한정 적자구조를 끌고 갈 수는 없다”고 강조하고 “미국민이 지고 있는 빚이 계속 늘어나게 되면 언젠가는 외국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시점이 닥치게 될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당황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덧붙였지만 세계 경제의 미래가 결코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경고음을 보낸 것이다. 불확실한 세계 경제에 경고음 그린스펀은 마지막 자리에서 왜 ‘백조의 노래’를 하지 않았을까. 왜 그랬을까. 그냥 듣기 좋은 소리나 한마디 하고 모양 좋게 무대 뒤로 사라지면 되는데 왜 가시 돋친 말을 던졌을까. 실제 세계 경제에 문제가 많아서일까. 퇴임을 앞둔 79세의 노회한 경제대통령의 눈으로 볼 때 세계 경제가 물가에서 노는 어린아이처럼 위태롭게 보여서였을까. 아니면 18년간의 FRB 의장 재직 기간 중 최대 실수로 꼽히는 감세정책 지지로 인해 미 재정적자가 매년 크게 늘어나고 이것이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커가고 있는 데 대한 책임감에서일까. 그린스펀의 경제인식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떠나는 자’의 책임 없는 립서비스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백조의 노래’는 아름답지만 길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이 남긴 ‘백조의 울음’이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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