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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시장에 현대자동차가 만든 트럭을 파는 것.'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오랜 숙원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5위 자동차제조사로 성장하는 동안 버스·트럭 등 상용차 부문은 전 세계 10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 2%대에 불과한 상용차 글로벌 점유율을 감안하면 북미시장의 벽은 높기만 하다.
정 회장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오는 22일 현대차의 모든 연구소가 남양연구소로 집결한다.
상용 부문 연구개발(R&D)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차 전주연구소 연구인력이 이삿짐을 싸고 현대차 기술의 심장부 남양연구소로 이전하는 것이다. 지난 2003년 현대차 울산연구소와 기아차의 소하리연구소가 통합해 아시아 최대 연구소로 출범한 지 12년 만이다. 1986년 경기도 화성시 남양만 간척지에 세운 종합기술연구소가 30년 만에 승용차와 상용차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통합 R&D센터'로 거듭나는 셈이다. 현대차는 승용차 기술력을 상용차에 접목해 진일보한 기술력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16일 현대차에 따르면 상용차 제작 및 설계 R&D 분야 연구원 350명은 다음 주부터 남양연구소로 둥지를 옮겨 R&D을 시작한다.
2020년까지 현대차를 버스·트럭 부문 글로벌 5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남양연구소의 승용차 부문과 새로 이전한 상용차 부문 연구인력이 협업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은 신기술을 덩치 큰 상용차에 먼저 접목해 테스트를 거친 후 승용차에 장착한다. 이를 위해 승용차와 상용차 간의 기술교류가 활발하다. 벤츠가 상용차 부문에 5,000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 각종 신기술을 앞세운 버스·트럭을 생산해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것도 승용차와 상용차 간의 '융합 R&D' 덕분이다.
현대차가 상용차 부문에 2020년까지 2조원을 집중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 포화상태인 승용차 부문 대신 상용차 쪽을 공략해 정체기로 접어든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중·대형 트럭과 대형버스를 생산하는 전주공장 증설에 4,000억원, 상용차 부문 R&D에 1조6,000억원을 쏟아붓는다. 늘어나는 생산 규모에 맞춰 신규 인력 1,000여명도 순차적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대신 연구인력은 남양연구소로 모아 큰 시너지를 창출한다. 전 세계 상용차 시장은 지난해 312만대 수준에서 2020년 396만대로 약 27%나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현대차는 5월 그랜드 스타렉스와 포터를 더한 소형상용차는 전년보다 1.7% 줄어든 1만1,092대를, 중대형 버스와 트럭을 합한 대형상용차는 14.8% 감소한 2,306대를 각각 판매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 측은 녹록지 않은 업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승용차의 기술을 상용차에 접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해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더 이상 승용차에 가려져 있던 상용차 부문을 방치할 수 없다고 회사에서 판단했다"며 "전주에서 이전한 연구인력이 현재 남양연구소에서 근무 중인 1만명의 개발자들과 통합하면 한층 높아진 기술력을 갖춘 상용차가 탄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차의 핵심 연구원이 집결하게 될 남양연구소는 1986년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이 매입한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애초 아파트 건설을 목적으로 구입했던 땅이지만 자동차산업을 이끌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 명예회장은 이를 연구소로 활용했다. 남양연구소는 주행시험장을 비롯해 충돌시험장과 설계, 파워트레인 등 완성차에 관한 모든 R&D 인력이 밀집해 있다. 2003년 울산연구소와 소하리연구소가 통합할 때 박사급 연구원 175명을 포함한 5,370명이 근무하던 이곳은 현재 1만여명으로 인력이 대폭 늘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차량 개발을 위한 모든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남양연구소는 국내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는 R&D센터로 거듭날 것"이라며 "연구인력이 떠난 전주공장은 글로벌 트레이닝센터를 설립해 매년 4만명 이상이 찾는 자동차 교육장과 테마파크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