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다양한 안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다. 대기업 총수의 이사선임에 대해 반대하는 한편 기업의 합병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반대표를 던진다. 이유는 명확하다. 주주가치 제고를 통해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국내에서 총 36조원 규모의 주식을 갖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보유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12월 결산법인의 주총이 마무리되는 대로 '주주권 행사지침'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이 지침을 실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상장기업들과 기관투자가들은 국민연금이 어떤 내용의 주주권 행사지침을 마련할지에 대해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의 이사 선임에도 반대=올해 주총 시즌에서는 표 대결까지 벌어질 만한 뜨거운 쟁점은 없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제고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반대'를 외쳤다. 지난 12일 개최된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주주가치 훼손이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은 2008년 주총에서도 비자금 조성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반대한 적이 있다. 국민연금은 이달 5일 휴켐스가 박연차 태광실업 명예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되고 책임투자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대했다. 박 회장은 현재 조세포탈 및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총 결과 정 회장과 박 회장은 이사로 선임되는 데 성공했다. 국민연금은 이 밖에 10년 이상 재임한 이사 선임이나 지나치게 높은 이사보수한도에 대해서도 브레이크를 걸었다. ◇주주가치 훼손하면 합병도 안 돼=주주가치가 훼손된다고 여기면 핵심 사업계획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9일 네오위즈벅스의 주총에서는 네오위즈인터넷 흡수합병 결정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네오위즈벅스는 올 초 자신들의 음악포털과 네오위즈인터넷의 콘텐츠ㆍ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ㆍ모바일 경쟁력을 결합해 사업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합병비율(1대 11.1376692)이 네오위즈벅스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표를 던졌다. 또 농우바이오와 S&T대우가 올린 정관 변경 건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제동을 걸었다. 농우바이오는 "주식 관련 사채에 대한 제3자 배정한도가 과도"하고 S&T대우는 "임직원들에게 보상한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물량이 총 발행 주식 수의 3% 이상이 돼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밖에 녹십자와 SBS홀딩스의 정관 변경 건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희석' 우려를 들어 반대했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전체 의결권 행사건 수 2,003건 가운데 반대의견은 132건으로 6.4%였다. 반대의견 비중은 ▦2004년 1.4% ▦2005년 2.7% ▦2006년 3.7% ▦2007년 5.0% ▦2008년 5.4% 등으로 증가해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주주권 행사 더욱 강화=국민연금은 이달 중 12월 결산법인의 주총시즌이 마무리되는 대로 합리적인 주주권 행사방안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규모는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5%에 달한다. 이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 책임도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취임 직후 주주권 행사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국민연금은 오는 4월 중 외부 컨설팅기관에 의뢰해 주주권 행사 강화방안에 대한 초안을 마련한 뒤 이를 검토한 후 9월까지 최종 방안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주주권 행사 대상과 절차에 대해 광범위하게 규정한 가이드라인은 내년 3월 주총부터 적용된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주주의 목소리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칫 국민연금을 통한 관치(官治)가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며 "기관투자가로서 감시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