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 타율조정 대신 자율퇴진 선택
보유 계열사 주식 전주 매각 배경
법정관리와 출자전환 등 `타율조정'의 위기에 몰린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율퇴진'을 택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사태도 급류를 타게됐다. 현대가 6일 “곧 발표하겠다“고 밝힌 `특단의 자구안'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MH의 선택과 거취다. 또 서산농장의 처리방법, 가족들의 협조 가능성도 달라진 내용이다.
정부와의 매각협상에서 문제가 됐던 서산농장은 일부를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지분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계열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도 주목되는 내용이다.
현대는 또 정부가 재벌해체라는 그동안의 기조에서 벗어나 건설문제에 대해 `현대 가족회사'의 지원(협조)를 요구하고 있어 자구안 마련을 위한 선택의 폭이 다소 넓어 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MH 형제들간 감정의 골이 너무 깊고, 건설을 도울만한 여력이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는게 고민. 중공업 등 일부 여력이 있는 회사도 소액주주와 시민단체 등의 눈치가 보여 이들을 납득시키면서 건설을 도울 현실적인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MH의 선택과 자구안=현대는 MH가 보유하고 있는 그룹내 계열사의 모든 지분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측은 “이번 자구안에서는 MH가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데 무게가 실려있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측은 특히 “이에 따라 MH는 현대의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MH의 선택은 건설을 살리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것이 현대의 설명이다.
이번 자구안이 실행되면 서산농장의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매입대상이 정부에 한정돼 있어 매각이 쉽지 않았다.
정부가 공시지가의 66%인 2,200억원 이상은 곤란하다는 확고한 입장이어서 협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전현직 임직원들이 회사살리기에 나서기로 했고, 중공업이나 상선 등 계열사나 가족사가 정관의 사업목적에 영농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농장을 인수할 수 있어 지분의 분할매각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또 한가지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 정 전 명예회장도 도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사재를 출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럴 경우 건설의 회생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는게 현대의 입장이다. 정 전 명예회장은 현재 서울중앙병원에 입원, 요양중이다.
◇현대가(現代家) 사람들의 지원 가능성은=6일 아침 서울 계동빌딩에서 감지된 새로운 현상의 하나는 정몽준(MJ) 현대중공업 고문의 움직임이다. 이날 오전 그는 형인 MH와 30분간 독대, 깊이있는 얘기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이 소위 `왕자의 난'이후 공개적으로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 이 모임에 대해 현대는 “MJ가 정부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 MH에 전달했고, 그 이후 자구방안이 나왔다“며 MJ가 현대건설 사태에 깊이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가족회사 중 여력이 있는 중공업의 실질적인 사주인 MJ는 지난 4일 MH와 전화통화 후 6일 오전에 직접 만나 대책을 협의했다. MJ는 다른 가족들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어 건설사태의 해결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MJ뿐 아니라 현대가의 사람들은 건설을 살려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채권단이 지난주말부터 노골적으로 가족들이 건설을 도와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어 강건너 불 보듯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상황.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정몽구(MK) 자동차이 아직 협조를 거부하고 있고, 위성그룹들의 대다수 기업의 사정이 건설을 도울 여력이 없다는게 문제. MH는 작은 아버지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상영 KCC회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정상영 회장은 가족회의를 주선하기도 했다.
◇계열사 사정 어떤가=MH계열사의 축은 전자와 상선이다.
전자는 연내 회사채가 8,000억원이 돌아오는 등 심각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 백방으로 자금조달을 하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상황. 건설을 돕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상선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해운시황이 사상 최고의 호조를 보이고 있어 상반기에만 57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어 연말까지 흑자 규모가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10년 이상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소액주주와 시민단체 등을 납득시킬 명분만 찾아 낸다면 건설문제 해결에 상당부분을 담당할 여력이 있다.
MJ가 이끄는 중공업은 상선과 함께 범 현대 계열사중 건설을 도울 수 있는 몇 안되는 회사로 꼽힌다.
MH계열의 상선이 중공업의 최대주주(자사주 펀드 제외)로 있는데다 건설에 대한 지급보증(1,800억원)이 있어 건설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상태여서 건설자구안중 상당부분을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정인영 명예회장의 한라, 정세영 회장의 현대산업개발, 정상영 회장의 KCC 등은 규모나 능력면에서 건설의 유동성을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
입력시간 2000/11/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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