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의, 아베 신조에 의한, 아베 신조를 위한 선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TV 생중계로 중의원 해산을 선언한 다음날인 19일, 자민당의 한 다선의원이 씁쓸한 심경으로 뱉은 말이 현지의 한 일간지에 보도됐다. 모티브가 된 것은 물론 지난 1863년 11월19일 미국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 국립묘지에서 했던 그 유명한 연설 문구다.
전날 비장한 표정으로 TV 카메라 앞에 선 아베 총리는 유독 국민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국민 생활'과 '국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단을 내리는 이상, 또 '국민과 함께' 아베노믹스를 끌고 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임'을 묻고 '국민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이지만 외부의 시선은 차갑다. 일본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와 자민당 총재선출, 불투명한 경제의 앞날 등 정권의 앞날을 내다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내린 결단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물론 그 자신의 개인적 경험도 일조했을 것이다.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1960년 당시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둘러싼 반발이 거세지면서 중의원 해산의 타이밍을 놓치고 사임으로 내몰렸다. 아베 총리 자신도 2007년 1차 정권 당시 지지율 하락 끝에 참의원 선거 패배를 겪고 취임 1년 만에 물러났다. 아사히신문은 2차 정권 들어 아베 총리가 "정치는 모멘텀"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해왔다고 전한다.
실제로 '정치인' 아베 총리 개인에게는 갑작스러운 국회 해산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신의 한 수'일 수 있다. 무기력한 야당이 연말 총선에서 정권을 차지하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이 아베 총리로서는 전열을 가다듬고 장기 집권의 2막을 열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임에 틀림없다. 선거에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아베노믹스는 물론이고 헌법해석 변경이라는 꼼수를 둔 집단자위권 행사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특정비밀보호법 시행에 이르기까지 아베 정권 출범 후 불거진 모든 논란도 잠잠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모멘텀'인 동시에 '명분'이다. 법적으로도 명분이 있는 증세인상 유보 문제에는 이토록 국민의 뜻을 중시하는 그가 극심한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킨 헌법해석 변경과 특정비밀보호법 시행 문제에 대해서는 왜 본인의 뜻을 고집했는지 일본 국민들은 납득할 수 있을까.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는 와중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굳이 선거를 치르는 것이 모멘텀의 논리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남의 나라 선거에 우리가 무슨 상관인가 할 수도 있지만 아베 총리의 정치가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년간 뼈저리게 느껴왔다. 과도한 엔저를 초래한 아베노믹스도, 동북아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과 안보정책도, 모두 이번 선거에서 중간평가를 받게 된다. 일본의 선택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