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넥슨-엔씨 경영권 분쟁 왜

넥슨 "재무먼저"vs엔씨 "개발부터"

극과극 기업문화·철학이 갈등 불씨


넥슨, 투자 등 관리에 집중… 게임서도 부분유료화 채택

엔씨는 창작·개발에 중점… 리니지 등 정액제로 운영해


양사 최고경영진 곧 만나 사태 해결 방안 논의키로

증시선 엔씨소프트·넥슨지티 모두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 28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평소와 같이 성남시 판교 사옥으로 출근했다. 얼굴은 굳어 있었다. 김 대표는 출근 직후 임원회의에 참석해 대책을 논의한 뒤 자리를 떴다.

# 김정주 넥슨 회장은 이날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있었다. 투자 대상을 찾기 위해서다. 대상은 게임이 아니다. 그는 미국에 자주 들러 스마트차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있다.

게임 1세대로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온 김 회장과 김 대표. 김 회장은 학교 선배인 김 대표를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런 그들의 우정이 금이 간 데는 수 면 밑에 잠복해 있던 조직문화와 철학이 충돌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창업자들에 의해 넥슨과 엔씨는 전혀 다른 조직문화를 갖춘 기업이 됐다"며 "서로 다른 길을 가려는 창업자와 기업들이 결국 부딪히게 됐다"고 말했다. 조만간 넥슨과 엔씨 최고경영진은 모임을 갖고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넥슨의 '재무', 엔씨의 '개발' 충돌=기업의 조직과 문화는 창업자들이 만든다. '재무'의 넥슨과 '개발'의 엔씨는 두 기업의 서로 다른 기업문화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관리'와 '창작'이다. 지난 2012년 넥슨이 김 대표의 지분 14.7%를 취득, 1대 주주가 된 뒤 3년 만에 극단적인 문화를 가진 넥슨과 엔씨는 끝내 충돌했다.


한 예로 엔씨는 장기간 그 흔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두지 않았다. 금융·투자 관리 등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말에야 CFO가 생겼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엔씨의 조직 주류는 '개발자'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간담회에서 "전략은 따로 없다"며 "게임사는 게임만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나는 항상 개발 쪽에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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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넥슨은 다르다. 재무와 사업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다. 한 예로 오언 마호니 넥슨재팬 대표는 인수합병(M&A) 능력이 뛰어난 CFO 출신이다. 그는 넥슨의 자금조달·투자·사업제휴·상장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맡아 2014년 넥슨의 대표이사가 됐다.

◇게임에서도 나타난 양사의 다른 문화=서로 다른 문화와 철학은 게임에서도 드러난다.

한 예로 엔씨소프트의 많은 게임은 정액제로 유지된다. 지출에 일정 한도가 있다. 기타 아이템을 살 수 있지만 게임에 큰 영향은 없다.

반면 넥슨 게임은 대부분 부분유료화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금을 많이 쓸수록 게임을 더 손쉽게 할 수 있다. 예컨대 '카트라이더'의 경우 아이템을 현금으로 산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김 회장과 김 대표의 행보도 다르다. 김 회장은 2013년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와 레고 장터 '브릭링크'를 인수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출시될 리니지이터널·혼·MXM 등 신작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에서 정상원 넥슨코리아 부사장의 말이 현재 넥슨을 말해준다.

그는 "넥슨 초창기, 게임을 만들 때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창의성이 강조됐다"며 "개인의 창의성으로 이렇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하며 개발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게임이 산업으로 정착되면서 모든 것이 수치화되기 시작했다"고 현재 넥슨을 말했다.

김 회장은 요즘도 미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게임을 벗어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고 있다. 반면 김 대표는 개발자 회의에 빠지지 않고 게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양사 최고 경영진 곧 회동해 해결방안 논의=넥슨재팬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해 1·4분기부터 3·4분기까지 투자 등 재무활동으로 464억엔(약 4,245억원)이 빠졌다. 현금잔액도 같은 기간 349억엔(약 3,200억원)이 줄었다. 반면 엔씨의 현금 수준은 국내 인터넷·게임 기업 통틀어 최고 수준. 2013년 말 순 현금성 자산은 6,750억원에 이르고 있다. 재무전문가가 많은 1대 주주인 넥슨 입장에서는 엔씨를 놓아두면 '기회비용'이 급증하는 꼴이다.

넥슨은 조만간 엔씨에 넥슨 인사를 이사회 멤버로 참여시켜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양사 최고 경영진도 곧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넥슨의 경영권 참여 수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 강도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분구조를 고려해 볼 때 경영권 분쟁 고조시 키는 지분 7.8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넥슨의 경영참여 소식에 영향을 받은 엔씨는 28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전날 대비 가격제한폭(14.81%)까지 급등한 21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넥슨의 자회사인 넥슨지티 역시 14.69% 상승한 1만6,400원에 장을 마치며 상한가를 기록했다.


박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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