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룡 칼럼] 투자의 위기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
얼마 전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우리 경제를 ‘우울증 환자’로 비유한 것은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진단으로 여겨진다. 우울증 환자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비관과 의욕상실이다.
낙관보다는 비관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활력이 떨어지는 모습은 우울증 환자를 연상하게 만든다. 수출 덕분이기는 하지만 5%선의 성장에다 3%대의 물가, 연간 250억달러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경제가 환자 취급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경제 '우울증' 증세
그러나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곪아 있는 환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바로 그런 형국이다. 경제성장의 3대 축인 소비ㆍ투자ㆍ수출 가운데 소비와 투자라는 2개의 성장엔진이 꺼져가고 수출이라는 단발엔진에 겨우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출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고 있지만 경제 전반에 대한 파급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수출의 부가가치 창출 및 고용창출 효과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의 분석이다. 다시 말해 과거 수출주도 성장 때와는 달리 수출만으로는 충분한 일자리와 소득창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가 5%씩 성장하는데도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하소연이 터져나오는 이유도 이런 데 있다. 결국 수출과 내수간의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하고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한 우리 경제의 우울증은 치유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처방이 나왔다 해도 민간소비는 물론 기업투자를 살리는 것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5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때문에 소득의 4분의1 이상을 빚 갚는 데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 소비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기업투자도 상황은 비슷하다. 개발연대의 고성장을 이끌었던 왕성한 투자의욕은 외환위기 이후 뚝뚝 떨어지기 시작해 지난해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 마이너스시대로 접어들었다. 사상초유의 저금리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가 부진한 것에 대해 경기순환적인 차원을 넘어 투자부진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지적된다. 무엇보다도 경제전망이 불투명해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다 고임금과 후진적인 노사관계, 노동불안 등으로 국내시장의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다. 기업들이 중국투자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국내투자에는 냉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출자총액 제한, 부채비율과 같은 규제도 투자의욕을 꺾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흔히 신성장동력으로 지목되는 신기술사업의 경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고위험사업이다. 그러나 출자총액 제한과 같은 규제 때문에 자금동원이 어려운데다 고질적인 반기업정서, 기업부실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책임을 묻는 풍토에서 누가 선뜻 모험투자에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투자 활성화가 특효약
지금의 반도체ㆍ자동차ㆍ철강 등 주력산업은 모두 고위험ㆍ고수익사업에 도전하는 진취적 기업가 정신이 창출한 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날 기업의욕의 저하는 곧 미래의 성장동력 창출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요인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우리 경제의 우울증은 소비와 투자의 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단기간에 소비와 투자를 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투자를 살리는 일이 한결 쉬워보인다. 규제와 반기업정서, 노사관계 개선과 같은 인위적인 장애물만 제거해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는 투자 활성화가 우리 경제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특효약이 아닌가 싶다.
입력시간 : 2004-07-21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