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5년 만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대수술에 나선 것은 불법 훼손 정도가 날로 심해지는 반면 실효성 없는 단속으로 지역주민의 박탈감은 점점 커지는 등 그린벨트가 ‘진퇴양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관(官) 중심 관리체계에서 탈피, 주민과 시민 참여로 자발적 정비를 유도해 혜택을 주는 수평적ㆍ협력적 관리체계로 전환한다는 게 그린벨트 혁신방안의 방향이다. 그러나 그린벨트 내 땅주인은 타지인들이 많다는 점, 주민들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점, 특별정비지구제도 도입에 따른 그린벨트 추가 훼손 가능성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않다. ◇특별정비구역은 ‘그린벨트 재개발’=특별정비지구제 도입이 검토되는 하남ㆍ시흥ㆍ남양주시와 부산 강서구 등의 그린벨트 내에는 합법적으로 축사 등을 지은 뒤 공장ㆍ창고로 전용하거나 토지형질을 허가 없이 변경하는 불법행위들이 일상화돼 있다. 이들 4곳이 연평균 3,000건에 달하는 불법행위의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단속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오히려 막대한 이행강제금 부과로 민원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 같은 불법행위를 뿌리뽑고 더 이상의 훼손을 막는 한편 개발제한에 따른 주민들의 불이익도 보전해주기 위해 특별정비지구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최소 10만평 이상인 특별정비지구로 지정되면 그린벨트에 산재해 있는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고 각종 친환경 시설물을 지어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된다. 주민 소득증대를 ‘당근’으로 제시해 난개발 상태의 그린벨트를 깔끔하게 ‘재개발’하겠다는 뜻이다. 이재홍 건설교통부 도시환경기획관은 “주민들도 막대한 이행강제금보다는 수익사업이 낫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며 “지구 지정요건을 갖춘 곳은 10~15곳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직접지원ㆍ참여 확대해 불만 잠재우기=정부는 지금까지 개발제한에 따른 주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도로ㆍ마을회관 등 기반시설 위주로 연간 900억원을 간접 지원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주택 증ㆍ개축비, 의료비, 난방비 등의 명목으로 가구당 연간 150만원씩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린벨트 내 515개에 달하는 집단 취락지구 중 50여개 정도를 선정해 ‘특성화 마을’로 조성하는 방안도 나왔다.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시설이나 수목원, 화훼단지, 자연학습 체험장, 유기농 농장 등을 꾸미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민 지원수단을 다양화하는 한편 그린벨트를 보전하기 위한 관리 시스템도 한층 강화된다. ‘개발제한구역관리공단’이 설립돼 주민지원과 토지매수, 불법행위 단속 등 기존 지자체의 역할을 상당 부분 떠맡는다. 민ㆍ관이 두루 참여하는 개발제한구역정책협의회는 훼손된 그린벨트의 복원 방향과 주민시설 설치계획 등을 종합 심의ㆍ조정한다. 이와 함께 주민이나 시민단체를 명예관리인으로 임명, 불법행위 등을 감시하도록 하는 ‘명예관리인제’를 도입하고 선진국형 ‘국민신탁(내셔널트러스트)’제도를 활용, 자발적 성금과 기부금을 통해 보전가치가 높은 자연자산을 영구히 보전하기로 했다. ◇투기세력 유입, 추가훼손 우려도=이번 혁신방안은 그린벨트 관리체계를 근본적이고 합리적으로 개선했다는 평가지만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특별정비지구 지정을 통한 대규모 수익사업의 과실이 개발을 노리고 땅을 매입한 외지인들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 개발 기대감에 투기세력이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전체 그린벨트 내 주민 42만7,000명 가운데 그린벨트 지정 당시부터 거주한 원주민은 3.6%인 1만5,165명에 불과하다. 특히 수도권은 원주민 비율이 2.3%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지구 지정시 원주민 비율과 외지인 토지소유 현황 등을 감안하고 선정된 수익사업에 대해서도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집단 훼손지가 예외 없이 서울 지근거리의 녹지라는 점 때문에 주민들이 지역 특성에 아랑곳없이 ‘돈 되는’ 골프장이나 골프연습장만을 앞다퉈 추진할 경우 혼란과 갈등이 일 수도 있다. 대규모 시설물을 설치할 때 주변지역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소득수준, 자발적 거주 여부를 감안하지 않은 주민에 대한 현금지원의 적정성 등도 정부가 향후 입법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