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LG전자 창립 50주년] 국내 첫 가전업체서 '글로벌 LG'로 우뚝

58년 금성사 설립…라디오·냉장고·TV 줄줄이 개발<br>매출 5,000만원서 41兆로 늘고 영업익 1兆 넘어<br>러에 업계 최초 생산법인 설립등 해외법인도 82개

58년 부산 연지동 금성사 공장

LG전자 국내 최초 흑백TV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판

트윈타워


국내 최고의 ‘가전명가’를 자부해온 LG전자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멀리 100년의 미래 기술을 주도하는 ‘디지털 LG’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골드스타(금성사)’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알려졌던 LG전자의 가전 제품들은 이제 반세기 만에 전세계인들의 주방과 거실에서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고 글로벌 LG의 명성을 날리고 있다. 국내 최초로 라디오와 흑백 TV를 만들어 전자산업의 걸음마를 뗐던 토종 기업 LG전자는 지난해 183억달러어치의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세계 속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글로벌 LG’로 뛴다=향후 LG전자의 목표는 2010년 세계 전자ㆍ정보통신업계 ‘글로벌 톱3’. 부문별로 보면 LG전자의 에어컨은 이미 8년 연속 세계 1위다. LG전자는 휴대폰ㆍ가전ㆍ평판TV 등 주력 품목들을 명실상부하게 세계 1위로 우뚝 세워 세계 최고의 종합 IT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한 LG전자는 여세를 몰아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릴 태세다. 휴대폰은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을 제치고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을 것으로 예상되고, PDP 사업은 하반기부터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LG전자는 올해 막대한 영업이익과 탄탄한 재무구조를 앞세워 기업 인수합병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LG전자 측의 부인에도 불구, 업계는 지난 1998년 빅딜 과정에서 분리했던 반도체 부문(현 하이닉스반도체)의 가장 유력한 인수자로 여전히 LG전자를 지목하고 있을 정도다. 기업 규모도 확 달라졌다. 창업 이듬해 5,000만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1조원으로 늘었고, 창업 당시 300명이던 임직원 수는 현재 120여개국에 위치한 해외법인과 해외지사를 포함해 8만2,000명으로 불어났다. 자본금 역시 1,000만원에서 지난해 기준 7조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또 1962년 2,900만원의 순이익을 내고 지난해 1조2,000억원 순이익을 내기까지 1980년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흑자를 낸 경이로운 기록도 갖고 있다. 50주년을 맞은 LG전자가 올해 어떤 변신을 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토종기업에서 세계로=지난 1995년 미국의 언론들은 “미국의 자존심이 아시아의 한 전자 회사에 무너졌다. 부끄러운 날이다”라며 일제히 LG전자를 대서특필했다. LG전자가 미국 최대 가전 회사였던 제니스를 인수한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인수 발표 소식이 나가자 전 세계 가전업계와 언론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LG전자의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현재 제니스는 10년간의 구조조정을 거쳐 한 해 약 9,000만달러의 디지털 TV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LG전자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LG전자의 해외사업 진출은 1968년 미국 뉴욕지사를 설립하면서부터. 1978년 12월 국내 가전업계로는 처음으로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데 이어 1982년 10월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지역에 해외 생산기지를 건설했다. 헌츠빌 법인 사례는 미국 하버드대가 강의 교재로 채택할 정도로 대표적인 한국적 경영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헌츠빌에서의 성공을 계기로 LG전자는 해외 진출을 점차 확대, 현재 82개의 해외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기업과의 제휴도 활발해 1999년에는 유럽 최대 가전회사인 필립스와 손잡고 LCD 합작 사업을 시작했고, 2001년에는 브라운관 사업에서도 손을 잡았다. 2006년에는 국내 전자업계 최초로 러시아에 생산 법인을 세워 신흥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산 증인=금성사가 세워진 1958년에는 전자제품이라고는 외제 라디오와 소수의 미국산 수입 TV 정도가 전부였다. 방송 환경도 열악했다. 더구나 라디오와 TV는 모두 수입 제품이었다. 이때 창업주인 고 연암 구인회 회장은 라디오의 국산화를 결심하고 금성사를 설립, 1년여의 각고 끝에 1959년 11월 국산 라디오 ‘A-501’을 내놓게 된다. 한국 전자산업의 태동으로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에 자신감을 갖게 된 구 회장은 3년만인 1962년 11월 라디오 62대를 미국에 수출한다. 금성사는 같은 해 총 3,592대의 라디오를 미국에 팔아 5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후 금성사는 라디오에 이어 국내 최초로 선풍기ㆍ전화기ㆍ냉장고ㆍ세탁기ㆍ에어컨ㆍ카세트녹음기ㆍ전자레인지 등을 줄줄이 개발했다.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를 써온 셈이다. 1966년 8월에는 처음으로 국산 흑백 TV를 개발,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라디오에 이은 7년 만의 기념비적 쾌거였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역사가 한 단계 도약했음을 알리는 이정표였기 때문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당시 19인치 흑백 TV는 6만8,000원으로 지금 돈으로 500만원 정도였다”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모자라 공개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만 판매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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