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수도권이 사는길

김용덕 <건설교통부 차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수도권 집중도이다. 안 그래도 좁은 국토에 과밀한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전체 인구의 48%가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다. 의료기관의 50.4%, 금융기관 예금의 68%, 공공청사의 85.4%, 100대기업 본사의 92%가 모여 있으니 수도권은 그야말로 초만원이다. 외국의 경우 이 정도로 인구가 집중된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수도권 집중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다는 프랑스가 18.7%, 영국이 12.28%, 일본이 32.4% 수준이다. 세계 제3의 경제대국인 독일은 8,30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최대 도시인 베를린의 인구가 350만명, 함부르크가 170만명, 뮌헨이 125만명에 불과하다. 도시의 크기가 경쟁력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수십 년째 공장건축 규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해 수도권 인구비중을 꾸준히 낮춰오고 있지만 그 결과로 인해 런던이나 파리의 경쟁력이 낮아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거대도시 하나에 의존하는 경제보다는 활기찬 지방도시들이 함께 떠받쳐주는 경제가 훨씬 더 강하다. 우리나라도 수도권 집중억제를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인구집중을 유발하는 공장과 대학의 신설을 규제하고 대규모 개발사업을 제한했다. 과밀부담금과 같은 경제적 부담을 지우고 조세도 중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은 계속 팽창하고 있고 그 결과 환경오염과 교통 혼잡, 부동산 가격상승, 지역갈등 등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 국가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되고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도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미국의 머서휴먼리서치사가 세계 215개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살고 싶은 도시’중 서울은 90위에 불과하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기능을 모두 한데 모아서 양적으로 팽창하는 것이 바람직한 수도권의 비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세계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수도권보다는 세계에서 제일 경쟁력 있고 삶의 질도 높은 수도권이 돼야 한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정부는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기업도시 건설 등 수도권 기능의 일부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 패키지를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은 이번 기회를 한 차원 높은 질적 도약을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우선 세계적인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전국에 산재된 IT클러스터를 연결하는 중심 축으로서 국제 IT허브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도심의 고궁, 인사동의 전통문화와 우리의 먹거리, 충무로의 영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를 상품화하면 서울은 아시아의 문화, 관광허브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콘텐츠를 어떻게 내실화해서 수도권을 한국의 대표적인 얼굴로 발전시키느냐가 ‘수도권발전전략’의 핵심이자 과제가 돼야 한다. 로마가 부럽지 않은 관광도시, 파리보다 나은 예술과 패션의 도시,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IT 중심지, 홍콩을 능가하는 물류 중심지, 뉴욕이나 런던과 경쟁할 수 있는 금융 중심지 등 질적으로 발전된 수도권의 새로운 비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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