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긴급 진단] 툭하면 터지는 납품비리, 위기의 홈쇼핑 <하> '상생 홈쇼핑'의 조건

비리업체 '사업권 박탈' 등 극약처방 필요

15조 규모 세계 최대 시장, 불과 6개 업체가 나눠먹어 사업자 늘려 경쟁유도를

상설감시기구 설립 감독 강화

영업익보다 많은 송출 수수료 기형적 구조도 바로잡아야


'신규 사업자는 있어도 퇴출되는 사업자는 없다?'

각종 비리로 얼룩진 홈쇼핑업계의 병폐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은 것은 국내 홈쇼핑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소수의 홈쇼핑사업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현행 체제에서는 납품업체가 절대적인 약자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비리가 양산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홈쇼핑 시장은 지난 1995년 출범 당시 34억원에 불과했지만 20년 만에 15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 과열을 이유로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강력히 규제하면서 20년이 지났음에도 홈쇼핑사업자는 6개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시장 규모가 작은 일본(5조원)에는 30개업체가 있고 중국(11조8,000억원)은 100개사가 넘는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망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홈쇼핑사업자를 2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시장을 6개업체가 독식하다 보니 '황금 채널'을 확보하기 위한 송출수수료도 기형적인 구조로 변질됐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홈쇼핑업계가 지상파 채널 중간에 위치한 채널번호를 받기 위해 지급한 송출수수료는 2009년 4,093억원에서 지난해 9,800억원으로 뛰었다. 지난해 홈쇼핑 6개사의 전체 영업이익은 6,844억원이었다.


매년 1조원대에 이르는 송출수수료를 지급하는 홈쇼핑업체들은 이를 보전하기 위해 유통업계에서 가장 높은 판매수수료를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조사한 홈쇼핑 6개사의 평균 판매수수료율은 34.4%에 달해 백화점 3사 평균치인 28.9%보다 5.5%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수수료가 이 정도일 뿐 홈쇼핑업체가 납품업체에게 관행적으로 떠넘기는 배송비, 사은품, 모델료, 제작비 등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50%를 웃도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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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32%)과 중소기업(34.7%)에게 받는 수수료 차별도 여전하다. 지난 4월 납품업체로부터 20억원대 금품을 수수해 대표이사를 비롯해 전·현직 임직원 10명이 구속된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대기업에게 27.8%의 수수료를 받은 반면 중소기업으로부터는 35.2%를 징수해 홈쇼핑업체 중 가장 중소기업에게 고압적이었다. 지난해 중소기업유통센터를 통해 홈쇼핑 입점을 신청한 중소기업 제품 2,780개 중 홈앤쇼핑을 제외한 홈쇼핑 5개사에 방송된 상품은 117개(4.2%)에 그쳤다.

홈쇼핑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안일한 시각도 홈쇼핑업계에 만연한 적폐를 고착화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홈쇼핑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5년마다 실시하는 재승인 심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비리 임직원에 대한 단발성 처벌로 끝날 뿐 홈쇼핑사업자에게서 사업권을 박탈한 사례는 전무하다. 재승인 심사의 주요 항목이 공정성과 투명성이 아닌 선정성과 사행성에 치중돼 있기 때문이다. 홈쇼핑을 여전히 유통산업이 아닌 방송산업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홈쇼핑업계가 뒤늦게 윤리경영에 나섰지만 고착화된 관행을 단시간에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지금이라도 재승인 취소라는 철퇴를 통해 비리 홈쇼핑은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잇따른 불공정 관행과 납품 비리로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홈쇼핑업계의 '밥그릇 챙기기'는 오히려 수위를 더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가 중소기업 판로 확보를 위해 제7홈쇼핑ㅋ을 신설하겠다고 하자 홈쇼핑업계는 인터넷TV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T커머스 서비스를 올해 말까지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신규 홈쇼핑의 등장으로 매출에 타격이 예상되자 일찌감치 확보해둔 T커머스 사업권을 지금에서야 활용하겠다는 꼼수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홈쇼핑 시장은 제한된 채널과 한정된 시간이라는 요소가 결합되면서 다른 유통업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성을 띄고 있다"며 "재승인 취소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는 것 못지 않게 홈쇼핑 서비스의 특수성을 감안한 상설감시기구를 마련해 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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