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아무래도 연예인은 공인


공직자가 아닌 어느 부류의 사람들을 '공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그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우거나 그들을 비난할 때 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연예인이 출연료를 문제 삼아 녹화를 펑크 내는 것은 공인 의식을 저버린 무책임한 행동이다"라고 할 때의 공인 호칭이 그렇다. 근래 어느 신문은 사설에서 연예인을 공인이라 칭하면서 "최소한의 공인 의식이 있었다면 마약 따위는 꿈조차 꾸지 말았어야 한다"라고 썼다.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치켜세우는 듯하지만 결국 그 공인성은 손가락질의 전제 노릇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왜 연예인들은 굳이 그 재미없는 공인 노릇을 자처하는지 모르겠다. 성폭행을 했다고 문제가 된 어느 탤런트가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공인으로서…"라며 물의에 대해 사과했다. 그가 공인임을 자임한 것이 듣기에 별로 개운치는 않다. 몇 년 전 어느 탤런트가 자살하자 상가에 온 나이 지긋한 탤런트가 이렇게 말하는 게 방송 화면에 비쳤다. "OO이는 잘못했어. 연예인이 공인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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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1964년 공직자를 공격하는 보도를 낸 언론이 명예훼손 책임을 지는지가 문제된 사건에서 언론사가 보도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보도하거나 그 진위 여부를 무모할 정도로 무시하면서 보도한 경우에만 명예훼손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다가 1967년에 들어서는 언론의 공격적 보도 대상이 돼도 이를 감내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의 뜻으로 '공적 인물(public figure)'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나중에 가서 여기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도 들어가게 됐다. 이유인즉 직업상 다수인을 상대해 지명도를 누리게 됐으니 그만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원도 2001년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연예인을 공적 인물로 정의한 일이 있다(서울중앙지법 2001가합8399 판결).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연예인으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는 '이른바' 공적 인물이라고 보는데, 보통 사람들에게라면 사생활에 해당하는 사항이라도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그런 사항이 대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에 관한 보도는 위법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유명 연예인이 당사자가 된 민사소송사건에서 조정 절차에 회부돼 함께 판사실로 들어가던 날 그에게 단단히 일러뒀다. 판사 앞에서 "내가 공인으로서…"라는 말일랑 절대로 하지 말라고. 그런 말에 비위가 상한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 일이 있어서였다. 그는 진중한 인물이었고 다행히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 절차가 진행되던 중 그가 자기 입장을 고수하며 양보하려 들지 않자 담당 판사가 이러는 게 아닌가. "에이, 왜 이러십니까. 000씨는 공인이잖아요, 공인." 딱하지만 아무래도 연예인은 공인인가 보다. 연예인이 공인답게 행동하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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