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21세기 인니 향료전쟁의 승자


인도네시아의 작은 바위섬 런(Run)은 17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혀를 마비시킨 향신료인 육두구(肉荳蔲) 주산지였기 때문이다. 영국ㆍ네덜란드ㆍ포르투갈ㆍ스페인이 무려 1세기 동안 이 섬에서 항료쟁탈전을 벌였다. 당시 유럽에서 최고가 향신료였던 육두구 한 주머니는 같은 분량의 금과 비슷한 가치를 지녀 최후 승자였던 네덜란드는 런섬을 차지한 대가로 지금의 뉴욕을 영국에 내주기까지 했다.

육두구로 서구열강의 각축지가 됐던 인도네시아가 4세기 후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적도에 걸려 있는 에메랄드 목걸이라는 별칭답게 인도네시아는 천혜의 관광자원은 물론 석유ㆍ가스ㆍ주석 등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다. 2억4,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세계 4위의 인구대국이기도 하다.


CEPA로 동남아 최대시장 빗장 열려

최근 세계경기 불황에도 연평균 6%대 고성장을 구가하며 인도네시아 시장을 둘러싼 강대국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이달 들어 호주ㆍ중국ㆍ인도 정상들이 잇달아 방문할 만큼 세계시장에서 주가가 치솟고 있어 마치 21세기판 향료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도 아세안의 중추국이자 동남아에서 유일한 주요20개국(G20)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동남아 최대 투자대상국으로 삼으며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지만 현대판 향료전에서 일본에 밀리는 형국이다. 인도네시아가 무역빗장을 일본에만 열어준 채 우리에게는 자유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일본과는 경제동반자협정(EPA)을 맺었으나 우리와의 협력은 실익이 낮은 다자간협정에 머무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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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인도네시아와의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를 맺기 위해 지난 7월부터 노력해왔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사절단 방문이 동인도를 둘러싼 전장에서의 형세를 일본과 대등한 수준으로 바꿔놓았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 CEPA를 맺어 2020년까지 교역액을 1,00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 기업참여 확대를 이끌었고 현지기업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뽑기 위한 협력도 얻어냈다.

대통령의 성공적인 세일스 외교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외교력이 바탕이 됐지만 그 이면에는 순방에 동행한 민간경제사절단의 노력도 숨어 있다. 정상회담 하루 전에 열린 '한ㆍ인니 비즈니스 투자포럼'에서 민간경제사절단은 에너지ㆍ자원 분야에서 7건의 MOU를 체결하며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장의 브리핑을 들으며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데 대해 많은 기업인들이 놀랐다.

양국 상의 통한 기업투자 확대 나서야

경제사절단은 최근 폭등하는 최저임금 문제를 비롯한 현지 진출기업의 애로사항을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에게 건의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투자진출을 위한 경제네트워크를 마련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대한상의는 현지의 한인상의와 MOU를 맺으며 인도네시아상의와 함께 3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국내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대한상의가, 인도네시아의 한국투자는 인도네시아상의가 맡고 양국 사정에 정통한 한인상의가 가교 역할을 해 양국 기업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해외투자의 최대 걸림돌인 시장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번 인도네시아 방문의 가장 큰 성과는 양국이 지난 40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이 있었다. 열린 빗장을 통해 21세기 향료전에서 승자가 될지는 남은 기업과 기업인, 국민의 몫이다. 인도네시아에는 두꾼이라는 주술사가 있는데 이들은 질병치료나 구직ㆍ사업ㆍ범인 검거를 비롯해 애정 문제까지 해결하는 만능꾼이라고 한다. 부디 모두의 노력으로 양국이 공동번영의 열매를 맺자는 주술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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