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신의 버린 프랑스 정부(사설)

대우그룹의 프랑스 가전회사 톰슨멀티미디어 인수시도가 좌절됐다. 기업과 기업간의 인수합병은 늘상 있는 것이고 협상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톰슨그룹은 국영회사이고 대우의 협상상대는 프랑스 정부였다. 지난 9월 대우의 인수사실을 발표한 것도 프랑스 총리실이었다. 알랭 쥐페 총리는 『인수파트너로 대우를 선정한 것은 프랑스의 이익과 산업 및 고용의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대우의 톰슨그룹인수사실이 공표된후 프랑스의 야당과 노조 언론 등은 이에대한 반대캠페인을 벌였다. 프랑스의 자존심인 톰슨그룹을 선진국도 아닌 한국의 기업에 넘길 수 있느냐는 투였다. 인종차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비이성적인 논거였다. 프랑스정부는 이같은 논거에 굴복, 톰슨그룹 민영화일정을 잠정중단한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아무리 정치가 여론의 반영이라지만 비이성적인 여론에 굴복, 국제간의 신의를 저버린 프랑스정부의 처사는 부당하다. 대우의 톰슨그룹 인수와 관련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가 「투자자를 차별하는 것은 유럽연합(EU)의 규칙에도 어긋난다」면서 「프랑스 자본주의가 새롭게 태어나느냐 아니면 대외신뢰를 잃느냐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보도한 것은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감정적 여론에 굴복 원래 대우그룹은 프랑스 라가르테르그룹이 인수한 톰슨멀티미디어 중 가전부문의 자회사를 인수했다. 첨단기술 분야인 방위산업부문은 라가르테르가 차지하고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는 가전부문을 대우에 넘긴 것이다. 대우가 인수자로 선정된데는 프랑스의 로렌지방에서 문닫은 컬러TV공장을 인수해 성공적으로 되살려놓은 실적도 크게 참고가 됐음직하다. ○위험부담 큰 투자 반대세력들이 프랑스의 자존심 운운한 톰슨그룹은 실상 1백40억프랑(2조2천억원)의 빚더미에 앉은 골칫덩이 「하얀코끼리」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내에서도 인수할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우에 차례가 왔다고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쥐페총리마저 『1프랑의 가치도 없는 기업』이라고 했을까. 그래서 대우의 인수금은 상징적인 금액인 단 1프랑이었지만 대신 48억프랑(7천4백억원)의 부채를 인수하고 5천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같은 기업여건으로 5천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대우로서도 크나큰 모험인 셈이다. 그럼에도 대우가 톰슨그룹을 인수하려했던 것은 브랜드의 매력 때문이었다. 세계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해외활동을 활발히 벌여 자동차 건설 등의 분야에서 실적을 쌓아가고 있는 대우그룹으로서는 사양화한 톰슨의 브랜드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프랑스 정부도 이에 신뢰를 표시했던 것이다. ○정부,유감 표명해야 이같은 전후관계에는 아랑곳없이 프랑스의 반대세력들은 대우그룹에 대해 온갖 험담을 퍼부었다. 그들은 대우가 엄청난 부채를 떠안는 조건은 빼버리고 「프랑스의 자존심을 단 1프랑에 팔았다」고 마치 거저 넘겨준 양 선전했다. 또 빚더미로 문을 닫아야할 판인 톰슨그룹의 형편은 제쳐두고 「대우는 싸구려제품이나 만드는 기업」이라고 매도했으며, 「대우의 기업총수는 뇌물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등의 감정적인 논리로 대중들을 자극했다. 그들은 특히 대우가 회생시킨 로렌공장이 노동쟁의가 없는 모범적 기업임에도 「사회의무를 도외시했다」는 식으로 헐뜯었다. 그들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남의 나라 기업의 자존심을 마구 짓밟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그룹은 게도 놓치고 구럭마저 잃게될 판이다. 최소한 프랑스사회에 「싸구려 메이커」라는 달갑잖은 이미지만 짙어지게 됐다. 이와 관련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인수파동 과정에서 대우가 프랑스 여론에 의해 그처럼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동안 이를 강건너 불보듯한 우리 정부의 태도다. 협상이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낱 변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프랑스 여론이 악화되고 있을때 어떤 진화노력도 보이지 않았고 프랑스정부가 약속을 파기한 지금의 시점에도 공식 유감표명 한마디 없다. 정부는 앞으로 프랑스정부와의 거래에서 이같은 신의배반 행위를 잊어서는 안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그들의 해외활동은 대한민국의 명예와도 직결되고 그 명예가 부당하게 침해당할 때 이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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