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박근혜정부 100일에 부쳐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난맥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은 인사의 난맥이었다. 새 정부의 조각 과정은 국정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여서 국민적 관심도 높고 대상자가 많아 자칫 인선과정의 판단 미스로 사고가 날 가능성도 크다. 그것의 가장 나쁜 예가 윤창중 스캔들이다.

취임 이후 국정 여러 어려움 겪어


취임 100일 사이에 향후 국정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미 있는 국정수행도 있었다. 미국 방문, 개성공단의 우리 측 근로자 전원 철수, 5월1일 무역투자진흥회의 등이다.

이 중에서 분기마다 정례회의로 열리게 될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회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언론들은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보도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매달 주재했던 수출진흥회의 사진을 나란히 실었고 '34년 만의 수출진흥회의 부활'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정희 정부 18년의 공과 중에서 최대의 공적은 수출입국이었다. 그가 집권하던 1961년 4,000만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수출실적은 1977년에 드디어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수출은 비약적으로 늘었으나 수출기반 확충을 외국의 원조와 차관에 의존해야 했던 형편이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서거할 때까지 무역흑자의 염원을 이루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역 규모 1조달러 시대, 외환보유액 3,300억달러 시대, 세계 7대 무역강국의 대통령이다. '수출'에서 수출입을 아우르는 '무역'으로 범위가 넓어졌고 '투자'가 추가된 게 무역투자진흥회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보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한국경제의 활로는 여전히 무역에 달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전공을 아버지와 같은 과목으로 선택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대통령의 업무는 너무 광범해서 국정 모두에 정통할 수 없고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업무 연관성이 큰 경제에서 한 분야에 정통하면 나머지는 거의 파악할 수 있다. 무역은 국가 경제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심적인 연결고리다. 외환과 금융ㆍ경기ㆍ투자ㆍ고용ㆍ경제성장ㆍ국가채무, 중소기업과 대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문제가 다 무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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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엔저정책은 환율ㆍ금융정책이지만 기본적으로 무역정책이다. 미국의 양적완화라는 이름의 달러 찍어내기 정책도 무역정책이기는 매한가지다.

경제에 이렇다 할 전공과목도 없이 수출을 등한시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5년 내내 무역적자를 기록, 누적적자가 500억달러를 넘었음에도 대응책을 강구치 못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초래했다.

무역 고리로 창조경제 이끌어내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가를 전공으로 삼았다. 국방예산을 동결하는 등의 긴축재정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와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10ㆍ26사태로 성장률이 마이너스(-) 6%까지 떨어졌던 우리 경제를 성장세로 돌리고 1986년 마침내 무역수지 흑자원년의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공과목 선정은 잘 됐다고 여겨진다. 무역으로 생존해야 하는 것은 부존자원이 없고 내수시장이 취약한 한국으론 숙명이다. 창조경제의 해답도 상당 부분 무역에 있다. 해외시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만, 수출기업만 잘 되는 지금의 경제를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처럼 성장의 혜택이 국민들에게 비교적 고루 미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창조경제다.

그러나 무역 규모가 커진 만큼 해법 찾기도 몇 십배 어려워졌다.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분기마다가 아니라 경제상황을 봐서 수시로 개최할 필요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집중력이 실린 진두지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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