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3월 4일] PIGS 유감

차이메리카(Chimerica)ㆍ브릭스(BRICs). 그동안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진 경제 분야의 신조어들이다. 그럼 올 들어 경제 분야에서 가장 유행한 신조어는 무엇일까. 여러 후보가 있겠지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만들어낸 'PIGS'를 백미로 꼽고 싶다. PIGS는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마구 재정을 투입한 탓에 재정위기를 맞게 된 유럽 국가들, 즉 포르투갈(P)과 이탈리아ㆍ아일랜드(I), 그리스(G), 스페인(S)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피그스'로 발음되는 이 신조어는 말 그대로 '돼지들'을 연상시킨다. 이들 국가가 평소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한데다 위기를 맞았어도 적자감축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돼지처럼 탐욕스럽다'는 뜻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PIGS의 대상을 두고 어이없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디트는 이탈리아는 재정위기와 무관하다며 PIGS에서 빼야 마땅하다고 발끈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조사 결과 지난해 재정적자 문제가 가장 심각한 5개국에 영국이 포함되자 이번에는 영국(Great Britain)을 포함시켜 'PIGGS'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 나아가 재정적자가 심각한 스페인(S)ㆍ터키(T)ㆍ영국(UK)ㆍ포르투갈(P)ㆍ이탈리아(I)ㆍ두바이(D) 등을 묶은 'STUPID'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이 말에도 이들 국가의 정책결정이 '멍청하다'는 뜻이 담겼다. PIGS는 다분히 악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신조어를 만들어낸 WSJ는 미 정부와 월가가 그동안 한 짓은 덮고 만만한 소국들에만 그 과오를 묻는 듯하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됐으며 또한 위기극복을 이유로 초저금리 정책과 천문학적 재정투입을 처음 시작한 나라는 어디인가. 한마디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러한 악성 신조어를 사용하는 우리 언론이다. WSJ가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우리가 그대로 받아써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읽기 쉽고 부르기 쉬운데다 유행어로서의 매력이 고루 갖춰졌다는 이유만으로는 용어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도덕적 요구'를 외면하기 힘들다. 거울에 비친 언론의 모습에는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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