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규제·어설픈 시장이 목죈다
>>관련기사
벤처캐피털업계가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락업(Lock-up) 등 시장흐름을 도외시하는 정부의 각종 규제와 벤처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정책자금 지원 등 벤처투자시장의 근본적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여건에 있다.
벤처캐피털사 스스로도 나름대로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다 코스닥 시장의 침체와 벤처기업에 대한 등록요건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주요 걸림돌이다. 투자기업을 코스닥에 등록시켜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어 사실상 자금회수의 길이 막혀버렸다.
벤처캐피털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코스닥 등록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장외시장에서의 주식 매각이나 기업인수합병(M&A) 등의 방안이 국내 여건상 제대로 성숙돼있지 않아 대부분 코스닥 시장에만 '목'을 멜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이것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 외부 요인에 멍드는 벤처캐피털
KTB네트워크는 당초 올해 32개사의 등록을 추진했으나 코스닥 시장환경을 감안, 23개로 조정한 상태다. 8월말 현재까지 16개사가 등록을 했거나 준비상태고 10월말까지 7개사를 등록심사에 올릴 계획이다.
A사는 올해 9개 정도의 투자회사를 등록시킬 계획이었지만 M&A 형태로의 등록을 포함, 현재 2개회사만 코스닥에 진출시켰다.
B사는 올해 코스닥에 등록한 투자기업 주식처분율이 60~70%선에 머물러있는데 등록회사의 주가가 당초 투자원금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기업들은 신규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투자자금을 제대로 회수할수 없으니 신규재원 마련도 여의치 못한 게 현실이다.
올들어 이뤄진 신규투자 규모는 지난 6월말 현재 3,688억원. 이는 지난 2000년 한해의 2조원과 지난해의 8,893억원에 비해 크게 떨어진 규모다. 투자의 선순환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근원적 관점에서 벤처캐피털사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먼저 코스닥 시장의 문제다. 벤처캐피털사가 투자자금 회수를 위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수단인 코스닥 시장이 너무 보수적 구조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코스닥 승인율. 올들어 지난 7월말 현재 코스닥 등록을 신청한 기업은 모두 137개사로 이 가운데 자진 철회한 12개사를 제외한 81개사, 59%만이 승인됐다. 이는 99년의 88.3% 114개사, 2000년의 82.2% 203개사와 지난해의 81.7% 210사에 비교해 볼 때 너무 저조한 실적이다.
백기웅 KTB네트워크 대표는 "코스닥 승인율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벤처기업의 특성을 제대로 감안하지 못한 심사기준 때문"이라며 "어쨌든 저조한 승인율은 벤처기업은 물론 벤처캐피털로서도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락업(Lock-up) 제도 역시 개선해야 할 문제다.
정부는 벤처캐피털사가 투자한 기업을 등록시킨 뒤 지분을 조기에 대거 처분,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논리로 락업제도를 도입, 현재 등록후 최대 3개월간 투자지분 매각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조치가 불평등하다는데 있다. 대개 3년 정도의 투자기간을 갖고 있는 벤처캐피털사와는 달리 1년 안팎의 시점에서 투자를 시행하는 기관투자가들에 대해서는 1개월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로 줄어든 것도 그나마 지난해 10월 업계의 강력한 문제 제기에 의해 개정된 것이다.
또한 등록을 준비하는 벤처기업의 최대주주가 최대 2년간 소유주식을 변동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신규투자를 받지 못해 벤처캐피털은 투자기업에 대한 '가치증대'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부호 벤처캐피탈협회 이사는 "기본적으로 정부나 관련기관이 규제 중심의 정책보다는 시장논리에 따르는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부득히 규제를 해야 한다면 공평하면서 세련된 형태로 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내부시스템에도 문제 있다.
99년 이후 벤처붐을 타고 신생 창투사가 대거 등록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벤처캐피털의 정통 경영방식을 이탈한 업체들이 잇따라 생기면서 투자시장의 왜곡이 초래됐다. 특히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생존에 위협을 느끼자 '속전속결'식 투자행태가 도입됐다.
초기기업이나 가능성 있는 기업을 발굴, 투자해 육성한 뒤 자금을 회수하는 3~5년 정도의 정석투자보다는 코스닥 등록 가능성 있는 기업만 골라 투자에 나서는 행태가 만연해진 것이다. 주가조작 등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도 덩달아 행해져 왔다.
또 등록이 이뤄지지 않으면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조건부 투자, 투자금액의 일정비율을 공제하거나 투자금 가운데 일부는 기존 투자회사의 주식으로 주는 등의 일명 '꺽기성 투자'도 이뤄지는 등 불건전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적은 자본금 탓도 있다. 벤처캐피털사의 등록조건 가운데 최소 자본금은 100억원.
7월말 현재 137개사 창투사 가운데 대략 70%가 자본금 100억원대 회사다. 이 정도 자금으론 효율적인 투자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물론 투자조합 결성 등을 통해 투자금을 확대해 나가지만 자본금이 기본적으로 적으니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실제 설립 2년째인 A사는 설립 초에 몇건의 투자를 한 뒤 개점휴업상태다. 당시 투자배수가 높기도 했지만 적은 자본금으로 투자에 나서다 보니 자본금이 바닥에 이르렀고 투자회수도 여의치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립 2~3년 된 회사 대부분이 이 지경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라는 것이 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이는 벤처산업 육성이라는 확고한 철학과 신념, 그리고 기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인력 부족이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남문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