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1월 12일] IT기기 진화의 딜레마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소파에 편히 앉아서 창가의 커튼을 내린다. 그리고 리모컨을 가볍게 터치하면 TV가 켜진다. TV의 화면이 바로 커튼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거실 한가운데 상당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TV 모니터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접을 수 있고 말 수 있는 TV화면은 '매트릭스' 같은 SF영화에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바로 금새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개발한 '플렉시블(flexible)한 디스플레이'가 그 주인공이다. 자연색에 가까운 화질과 곡면 화면이 가능하다는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아몰레드'라는 LED TV 상품명으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진 미래형 디스플레이 양산에 성공한 회사다. 화면이 늘어나는 스마트폰 이 기술이 진화하면 더욱 놀라운 기능이 나온다. 모바일 기기의 대명사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마트폰은 손가락을 화면에 대고 움직이면 글이나 그림이 확대되고 축소된다. 플렉시블한 디스플레이를 채용하면 화면 자체가 늘어나고 줄어들 수 있다. 주머니에 넣거나 시계처럼 손목에 차고 다니다가 죽 펴서 늘리면 그대로 대형 화면으로 변신한다. 이 기기에 LTE라는 4세대 정보통신망을 채용하면 지하철 안에서 1분 만에 웬만한 영화 한편은 다운받아서 즐길 수 있다. 정보통신(IT)기술의 진화는 무궁무진하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마 인류역사와 함께 계속돼온 과학의 성장과정에서도 이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우리는 너무 빨리 변하는 모바일 기기의 진화 속에서 보다 편리한 삶을 영유하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가 진화하면 할수록 그만큼 무엇인가를 잃어간다는 느낌이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 특히 스마트폰을 가지고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다. 대부분이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 때우기처럼 보인다. 일부 스마트폰 무용론자들이 말하는 '스마트폰은 어른들의 비싼 장난감'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과거처럼 신문이나 책을 보는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앞으로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등이 본격 출시되면 지하철 내의 모습은 모바일 기기의 경연장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자동차의 필수품이 된 내비게이션을 보자. 내비게이션 덕에 어두운 밤에도 모르는 길을 쉽게 찾아갈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길을 기억하는 뇌 구조는 사라졌다. 여행하기 전에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 연구해보는 설레임과 즐거움은 이제 바보스러운 일이 됐다. 모바일 기기에 의존하는 스마트 워킹 사회도 걱정스러운 생각부터 떠오른다. 매일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가정을 나와 일터로 출근하는 일은 일종의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해준다. 앞으로는 어느 곳이 일터든 일과 쉬는 것이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에만 심취하고 어떤 사람은 놀기에만 급급하는 극단적인 양상이 나올 법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모바일 친화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보기술(IT)시장 조사업체인 인포머텔레콤 앤드 미디어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가입자들의 인터넷 사용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평균의 3.2배이고 미국과 일본보다도 훨씬 앞서 있다. 빠른 변화에 지친 현대인 이렇듯 빠른 변화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최근 한 기능만 중점을 둔 '이지(easy)기기'가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통화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휴대폰, 사진만 찍는 카메라, 복사만 하는 복사기, 노래만 들을 수 있는 MP3를 찾고 있다. 음식문화에서 패스트 푸드(fast food)에 질린 사람들이 슬로우 푸드(slow food)를 찾는 현상과 비슷하다. 모든 IT기기는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다. 기기가 통합되고 복잡해지면서 점차 사람들은 기기에 종속되는 분위기다. 영상통화의 값이 싸지고 활성화 되면 현대인은 결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기우는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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