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밥그릇 챙긴 국회, 세비인상 마다한 미 의회

한국과 미국의 입법부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우리 국회가 기득권 포기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즈음 태평양 건너 미국 의회는 세비인상을 스스로 포기했다. 예산안 처리라는 중대 현안을 앞둔 한국 국회와 재정절벽 협상 데드라인에 몰린 미국 의회의 위중한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선택은 확연히 엇갈렸던 것이다.


미국의 세비동결은 존 배로 하원의원이 주도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의원 세비를 0.5%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배로 의원은 성명을 내고 "미국의 가정이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세비를 올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동료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미 연방의원 세비는 지난 2010년 이후 동결돼 이번에는 소폭 올려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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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절벽 협상은 결과에 따라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이슈로 지구촌 전체가 숨죽이고 지켜봤던 사안이다. 이런 막중한 상황에서 세비안건은 어떻게 보면 작은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미 의회 의원들 스스로 세비인상을 마다했다는 사실은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익숙한 우리 입장에서는 놀랍고 부러운 일이다.

많은 국민들은 대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세비 30% 삭감을 약속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는 새해 세비를 단 한푼도 깎지 않았다. 정치권은 이번에 동결했으니 나름 고통을 분담했다고 생색내는 모양이나 사실 따지고 보면 대선을 앞두지 않았던들 그조차 가능했는지도 의문스럽다. 1년 전 국회는 2012년도 세비를 무려 20% 인상하려고 추진하다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서야 인상폭을 5.1%로 낮춘 전례가 있으니 말이다. 어디 이뿐이랴. 여야 공히 약속한 의원연금 폐지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라 살림살이를 두고 당리당략에 얽매여 그토록 샅바싸움을 하면서도 제 밥그릇 챙기기에는 여야가 어쩌면 그렇게 일사불란한지 모르겠다.

예산안을 졸속 처리하자마자 집단외유를 떠나는 몰염치한 작태를 보노라면 국회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겠다. 이제는 국회 앞에서 국민들이 피켓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정치쇄신을 더 이상 국회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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