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30일] 포레스트


‘파리의 움직임을 증폭시켰더니 군대가 행진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1912년 리 드 포레스트(Lee de Forest)의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기적의 비결은 증폭기. 포레스트가 1906년 개발한 삼극 진공관(Audion)에 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한 음성증폭 오디온은 인류에게 ‘전자와 통신 혁명의 시대’를 안겼다. 트랜스지터와 반도체의 뿌리가 3극 진공관이다. 전자시대를 연 포레스트는 1961년 6월30일, 88세로 사망할 때까지 300여개의 발명특허를 남긴 발명가이자 과학자. 1873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무렵에는 소형 용광로와 기관차, 은도금 기계를 발명해냈다. 1899년 예일대에 신청한 박사학위 논문은 당시까지 무선통신으로 알려진 주제를 다룬 최초의 학술 논문으로 꼽힌다. 성공은 실험실을 넘지 못했다. 상업화와 실용화에는 잇따라 고배를 맛봤다. 오히려 특허권 소송에 휘말려 그나마 있던 재산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평생 4번 결혼한 것도 상업화의 좌절과 연이은 패소의 후유증인지도 모른다. 포레스트가 꿈꾸던 라디오의 사업화에 성공을 거둔 주역은 AT&T사. 대형 연구실을 운영하고 고급 두뇌를 적극 유치하던 AT&T사는 포레스터에게 특허를 사들여 독자적인 실용기술을 개발해냈다. 자본의 힘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시장을 연 셈이다. 포레스트로부터 시작된 통신ㆍ전자산업의 시장 규모는 3,00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라디오의 아버지, TV의 할아버지’로 불리는 포레스트는 사업화뿐 아니라 미래도 잘못 짚었다. ‘텔레비전은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장담이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달에 발을 올려놓을 수 없다’던 호언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