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16일] 웹스터


갈수록 말이 갈렸다. 각국에서 모여든 이민들의 언어와 영어가 섞이고 서부에서는 매일같이 신조어가 생겨났다. 동부의 신사들은 영국식 표현과 발음을 고수했다. 분열 일보 직전의 미국 영어는 어느날부터 한 줄기로 뭉쳤다. 이 사람 덕분이다. 노아 웹스터(Noah Webster). 1758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등록금(예일대 법대) 조달을 위해 교사로 일하다 진로를 바꿨다. 오래된 영국 교과서를 대체하겠다는 생각에서 1783년 출간한 ‘철자교본’은 1840년대 중반까지 3,000만부가 팔렸다. 미국 인구 1인당 1권꼴. 당시에는 성서 이래 가장 많이 팔린 책자였다. ‘미국어’라는 단어도 여기서 처음 쓰였다. 정치적으로 ‘주권(州權)보호 보다 강력한 연방’을 주장했던 그는 연방주의자들이 만든 잡지와 신문사 편집을 맡고 주마다 다른 저작권을 합치는 법률 제정도 이끌었다. 이름이 알려질 무렵인 1800년 미국 독자적인 사전편찬 기획을 밝히고 1806년 ‘간추린 영어사전’을, 1828년엔 ‘아메리칸 영어사전’을 내놓았다. 단어 7만개가 수록된 아메리칸 영어사전은 20달러라는 가격 때문에 첫해 주문이 미국 2,500부, 영국 3,000부에 그쳤지만 1870년대 초반까지는 14만부가 팔리며 영어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음악 같은 단어에서 ‘k’자(musick→music)를 뺀 웹스터의 간략화는 영국도 용법을 따랐다. 100년 뒤에 나온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41만개 단어를 담고 있으나 71년에 걸친 수천명 전문가들의 공동작업 결과물인 반면 웹스터는 모든 작업을 혼자서 마무리했다. 웹스터가 평생을 바친 언어는 미국사회 통합을 넘어서 세계의 중심어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어가 세계로 퍼질 것’이라는 웹스터의 예언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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