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일장기불황 시사점] '일시적 회복'가능성 방심금물

최근 우리 경제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자, 일부에선 벌써부터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섣부른 방심은 금물이다. 92년 이후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 기업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경제 치유를 소홀히 한데다, 정부가 지난 96년 일시적인 성장률 회복을 본격적인 경기 회복으로 오인해 정책방향을 잘못 잡은 결과 아직까지도 최악의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일본경제의 장기침체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경제는 92년부터 지난해까지 성장률 평균 1.1%라는 극심한 침체에 빠진 상태다. 금리인하와 15조엔을 투입한 경제종합대책에 힘입어 96년에 5.1%를 기록했으나 이후 상황이 급격히 악화, 지난해엔 마이너스 2.8%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기업 도산도 2차 대전후 두번째로 많은 1만9,171건을 기록, 지난 2월에는 실업자수가 313만명에 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주범은 경제 버블=일본 경제체질이 허약해진 것은 80년대 중반의 거품경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가 금융·재정정책을 장기간 완화한 결과 주가가 86년부터 4년동안 3배나 뛰고 땅값도 5년동안 3배로 치솟는 바람에 일본 경제는 급속히 과잉투자에 따른 비만체질로 바뀌어간 것. 결국 90년대 들어 거품 붕괴로 주식과 부동산가격이 폭락하자, 민간부문의 자본손실과 고용불안 등이 한꺼번에 몰아닥쳐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버블 붕괴로 가계나 기업이 입이 96년 현재 840조엔의 자본손실을 입고 실업은 91년 136만명에서 지난 2월 313만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저축증대까지 겹쳐 민간소비성장률은 마이너스 1.1%에 머물렀다. ◆방향 잘못잡은 정부=게다가 거품 붕괴 후에도 일본 정부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에 나서기보다 정부 주도의 규제정책을 지속하는 등 경제정책을 잘못 운영했다는 분석이다. 막대한 규모의 재정자금을 금융기관·기업 구조조정 등에 투입하지 않고 공공투자에 사용, 경기침체의 핵심요인에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된다. 게다가 92년부터 재정확대정책을 펼쳐 온 정부가 96년 일시적인 고성장을 본격적인 경기회복의 시작으로 알고 소비세율을 인상하는 등 재정정책을 전면 전환, 정부의 판단착오가 이후 경기를 한층 침체시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위축되는 투자심리= 경기회복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투자심리는 점점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 민간설비투자가 11.4%나 줄어든 것을 비롯, 92~98년중 설비투자는 연평균 1.6%씩 감소했다. 일본 기업들이 사상최대의 과잉설비에 시달리는 데다 (지난해 3·4분기 중 85조9,000억원 규모), 수익성이 날로 악화되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마저 상실했기 때문. 한마디로 투자를 북돋울만한 요인이 전무한 상태다. 조사결과, 금융기관 포함 3,296개사 가운데 적자기업은 96~97년 370여개에서 98년 601개로 대폭 늘어난데 이어 올해 680개에 달할 전망이며, 1,361개 상장사들이 내다보는 경제성장률은 올해부터 2001년까지 평균 0.8%에 그친다. ◆금융기관 부실화·기업 구조조정 지연=기업 부도가 늘어나고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일본 은행들의 부실대출 규모는 지난해 9월 총 대출의 12%를 넘는 730조270억엔에 달했다. 이처럼 은행 수익성이 나빠지고 지난 97년 이후 대형 금융기관의 도산 사태가 잇따르자, 신용경색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점도 장기불황의 요인이다. 종신고용 관행과 이미 성숙한 제조업에 안주하려는 자세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퇴보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거품없는 성장이 중요=이같은 일본의 장기불황 요인은 최근 간신히 회복국면으로 돌아선 우리 경제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선 안정된 성장기반을 구축하되 거품 경제가 생겨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각별한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것.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 과소비나 과잉투자를 유발하는 거품경제는 경제 체질을 약화시킨 후 갑작스레 붕괴하게 돼 있다. 또 실업 증대에 사회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계속 추진해 소비·투자심리를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금융 구조조정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대기업 구조조정 지연으로 금융기관의 추가 부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기업구조조정 지연으로 과잉설비를 해소하지 못한 점이 투자 및 경기 회복의 발목을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첨단기술과 지식산업을 집중 육성,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 성장기반을 강화해야 한다./신경립 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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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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