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F1 코리아 그랑프리


인간은 달린다. 질주 본능을 찾는 마라톤 대회가 한창이다. 속도 경쟁의 끝판 격인 영암 F1 대회도 막을 내렸다. 빠르고 멀리 달리는 자가 많은 것을 사냥하던 수렵시대로부터 빠른 머신이 돈과 명예를 차지하는 21세기에 도달하기 전까지 경주의 매개체는 말(馬). 고대 이집트에서 군용으로 사용되던 전차(戰車ㆍchariot)는 그리스에서 올림픽 종목에도 들어갈 만큼 인기를 누렸다.


△군중에 대한 볼거리 선사를 통치 덕목의 하나로 여겼던 로마 시대에는 전차경주를 위한 거대한 경기장도 곳곳에 들어섰다. 4두 마차들이 생사를 겨루는 원형 경기장의 승부는 영화 벤허의 백미로 꼽힌다. 로마를 계승한 비잔틴제국에서도 전차경주는 시민들의 오락거리로 사랑 받았다. 전차경주는 집단 오락인 동시에 거대한 군사훈련이었다. 활이나 창을 잘 다루는 전사에게 빠른 기동력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바로 전차였기 때문이다. 오락과 전투력을 동시에 제공하는 전차는 중세 초부터 빠르게 사라졌다.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기술 발전과 직접 민주주의의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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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의 종언을 부른 것은 등자(橙子). 기원전 6세기부터 등장한 안장(鞍裝)과 달리 기원후 3~4세기에 극동 유목민족들로부터 시작돼 8세기께 유럽에 전파된 등자는 기마전술의 근본을 변화시켰다. 안정적 기마자세가 가능해지며 중장갑으로 무장한 기사가 전장을 지배했다. 봉건제와 절대왕정 밑에서 경주도 사라져갔다. 반란을 우려한 권력자들이 군중의 집결 자체를 꺼린 탓이다. 1780년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근대 경주라는 영국의 더비 레이스가 열렸다.

△등자가 속도와 안정성에서 인간을 확장시키고 군중을 해산시켰지만 자동차라는 물질 문명은 속도의 한계를 끌어 높이고 군중을 다시 불러 모았다. 1894년 파리~루앙 간 자동차경주 이래 군중들이 자동차 레이스에 환호한다. 자동차경주의 극치는 F(Formula)1 그랑프리. 최고ㆍ최첨단의 성능을 갖췄기에 차가 아니라 머신으로 불리는 F1 대회는 올림픽ㆍ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제전으로 꼽힌다. 어렵사리 성사시킨 국내 대회를 더 볼 수 있을까. 누적 적자와 대회조직위원회ㆍ전남도 간 갈등 해결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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