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8개의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가운데 4개의 미비준 협약을 비준하려는 이유는 그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면서도 ‘노동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다. 그러나 협약 비준시 미칠 사회적 파장이 워낙 커 세심한 검토가 요구된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최근 노동환경의 변화가 우선 고려됐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계기로 거세지고 있는 노동계의 노동법 개정요구와 이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탄력적이고 논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제노동기준(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우리 노동법도 고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제협약의 국회비준 절차를 거치게 되면 이들 4개 미비준 협약과 상충되는 다른 법률을 개정하는 복잡다단한 과정과 이들 협약을 비준하는 데 따른 사회적인 논쟁은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짐이 된다. 정부에서 “일단 방향은 잡았지만 비준시기는 유동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ILO 기본협약 비준 어떤 의미 갖나=우리나라는 지난 91년 12월9일 152번째로 ILO에 가입한 후 현재까지 ILO가 만든 총 185개의 협약 중 20개 협약을 비준했다. 8개의 기본협약 가운데 4개는 비준했지만 4개는 아직 미비준 상태다.
국제노동법의 준칙인 ILO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협약(Convention)과 권고(recommendation)가 있다. 협약은 회원국이 비준하는 경우 국제조약이 돼 이행의무가 부과되는 반면 권고의 경우 이행의무는 없다.
ILO는 특히 185개의 협약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근로자의 권리를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 4개 부문으로 나눈 뒤 8개 조항을 ‘핵심협약’으로 분류, 일반협약보다 높은 수준의 조치를 가입국에 요구하고 있다.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 우리나라는 비준을 꺼려왔고 이는 우리 노동시장을 국제노동계가 낮게 평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OECD 30개 국가 가운데 결사의 자유 부문에 해당하는 제87호와 98호 협약에 모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과 우리나라 2개 국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머지 4개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이 같은 시각에 반전을 꾀할 수 있고 앞으로 새 무역장벽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돼온 ‘블루라운드’도 피할 수 있다는 게 국내 노동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협약은 비준 1년 후 효력이 발생한다.
◇비준 장애물은 없나=일단 비준시기가 문제다. 연내 혹은 내년 정기국회 비준이 추진될 경우 “경제도 어려운데 소모적인 사회적인 논쟁거리만 만든다”는 재계의 반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방향은 잡았지만 사실 정부가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라고 설명,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현재 정부는 지난해 11월 제출된 ‘노사관계법과 제도 선진화방안’의 입법시기마저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 비준시기를 조율할 방침이다.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등 2개 부문 4개 협약을 한꺼번에 비준할지, 단계적으로 비준할지도 고려대상이다.
현재 국내법이 이들 협약과 상충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공무원노조의 경우도 그렇지만 직권중재 대상 필수공익사업의 범주도 법률을 바꿔야 한다.
또 강제노동 금지 부문 협약인 29호는 국방의무나 사법부 심판에 따른 교화목적 강제근로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근무요원 형태 근로자, 정치사상범, 파업사상범 등에 대해서는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현행 공익근무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