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합리주의의 태두로 잘 알려져 있는 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진리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류의 발견과 새로운 이론의 정립이라는 과정을 통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며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닫힌 세계의 절대적 진리는 과학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칼 포퍼가 주장한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열린사회가 가능하다는 논증의 방법론이 토론문화가 만개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오랜 동안 우리 사회는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결론 도출에 매우 인색했다. 토론 자체도 익숙하지 않았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말인데 과묵하고 말이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말을 많이 하고 자기 주장을 펴는 것에 대해서는 좋지 못한 평가를 해왔다.
이렇다 보니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권위와 권력에 의존하게 되고 논리적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끝까지 우기면 된다는 식의 풍조가 만연했던 것이다. 자기와 주장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무조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강박증도 문제다. 결국 어떤 견해가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이며 효율성이 있는가를 고민하기보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받아들여 극단적인 주장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발견하기도 한다.
토론이란 것이 자칫 잘못 생각하면 매우 비생산적인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토론의 과정을 거친다면 더 타당한 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실패할 확률도 줄일 수 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수평적 관계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서 토론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토론을 잘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룰과 원칙하에 토론이 진행돼야 하며 결과에 대한 합의 유지와 실천이 중요하다. 또 토론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타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와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토론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황희 정승이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고 한 노장(老莊)적 지혜를 되새겨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 사회의 토론문화는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라고 했다. 하루속히 건전한 토론문화가 정착되는 열린사회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종수(대우증권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