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6ㆍ15 남북공동선언` 3주년을 맞이했다. 2000년 6ㆍ15공동선언은 한반도 현대사를 가르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분단 이후 민족공조의 이정표가 된 이 선언은 7ㆍ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장전(章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종래와 달리 상당한 실천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 후속회담만 해도 지금까지 총 69회에 이른다. 여섯 차례의 방문단 교환으로 총 6,210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남북교역은 15억불을 넘어섰고 끊어진 허리 남과 북의 경의선, 동해선이 연결됐다. 또 개성공단의 착공식이 예정돼 있는가 하면 앞으로도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다각적인 교류가 예상되고 있다.
6ㆍ15공동선언은 흔히 `햇볕정책`이라 불린 `대북화해협력정책`이 낳은 인고의 산물이다. 햇볕정책은 `어떻게 하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 하는 데 그 기조가 있었고 적극적 교류와 협력을 통한 북한의 변화를 추구했다. 그 성과로 남한과 외부 세계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적대감이나 경계심은 크게 완화됐다. 국제적으로는 대북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한민족의 운명이 외부적 힘에 의해 좌우되는 굴종의 역사를 청산하고 자주외교를 펼칠 수 있었다.
북한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남한의 대화론자들을 궁지로 몰아 넣기도 했지만, 햇볕정책이 반세기를 이어온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민족공조를 위한 `대화`와 `협상`의 길은 터놓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퍼주기와 노벨상 논란, 지속된 정권의 불안정으로 이어진 안개정국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내내 꿋꿋이 이 정책을 추진했고, 대북송금이 특검으로 비화하고 북한 핵 문제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지금도 강한 신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김 전(前) 대통령이 6ㆍ15공동선언 3주년에 즈음해 밝힌 북핵 문제의 해법은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대화국면 보다는 미국 주도의 경직된 대북 압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제재`를 의미하는 `추가조치` 혹은 `더욱 강경한 조치`가 취해져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 정세에서 김 전 대통령이 던진 `경험적 충고`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설득력이 높은 것이다.
햇볕정책을 계승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국제사회를 설득할만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남한당국과 최후의 선택 단계로 내몰리고 있는 북한, 그리고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부시 행정부 모두가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전갑길(국회의원ㆍ민주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