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경제 百年大計 교육에서 찾는다] 3. 뿌리 깊은 인재를 키우자 <3> 대학, 서열화가 아니라 차별화다

지방-산학연계 서울-주전공 중심으로 대학 특화해야<br>전공보다 간판 중시 풍조로 대학교육 부실·황폐화 초래<br>도심형 고급직업대학 설립<br>맞춤형 취업컨설팅 지원 등 산학일체형 인재 육성 시급



내년 2월 지방 모 사립대를 졸업하는 K(24)씨는 아직 변변한 취업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공계 간판학과인 전자공학과를 나왔지만 겨우 면접기회를 얻은 회사들로부터 연봉이 1,500만원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고는 면접을 포기했다. K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전공 공부를 했다고 자부했지만 대기업에 지원할 때마다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며 취업과 서울 소재 대학원 진학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국내 모든 대학들이 차별화ㆍ특성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지만 입시현장과 캠퍼스의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졌다.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를 더 따지는 현실에서 실용교육을 강화하고 학교마다 자신만의 강점을 살린 차별화를 꾀하라는 말은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대학의 경우 지역산업과 일체를 이룬 산학 시스템으로, 서울은 각 대학의 주전공을 살린 특성화대학으로 육성하는 것만이 우리 대학교육의 살 길이라고 강조한다. ◇해마다 퇴보하는 특성화교육=대학들의 특성화ㆍ차별화는 20~30년 전보다도 오히려 떨어지는 실정이다. 'A대학은 전자공학, B대학은 미술ㆍ건축, C대학은 법학'식의 특성화는 지난 1980년대 이후 대학들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백화점식 학과배열에 묻혀 싹이 잘렸다. 오로지 '서울대-연ㆍ고대-서울 소재 기타대' 식의 서열화만 더욱 공고해지고 학생들과 학부모ㆍ교사는 물론 취업현장에서조차 전공보다 간판을 더 중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교육은 부실화를 넘어 황폐화 수준에까지 이른 지경이다. 특성화대학으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표창까지 받은 지방의 한 4년제 대학은 올 2월 졸업생이 입학정원의 30%가 채 되지 않았다. 부실한 커리큘럼에 취업 비전을 찾지 못한 학생들이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 편입에 도전하거나 군 입대 후 복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 때는 물론 2~3학년 때 철저히 대학 서열 순으로 편입에 도전하는 '먹이사슬'마저 형성됐다고 현장에서는 말한다. ◇'실용중심' 특성화 과감히 추진해야=대학들이 내세우는 것만큼 현장에서 특성화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 해법은 특성화ㆍ차별화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갈수록 청년고용 사정이 악화되고 인턴ㆍ비정규직 등으로 취업양태가 부실해지는 시점에서는 무엇보다 특성화교육에 따른 개개인의 경쟁력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레알슐레(실업학교), 파호흐슐레(전문대학)은 특성화교육의 세계적인 모범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대학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이나 간다는 인식이 있지만 독일에서는 고교 졸업 이후 선택하는 또 하나의 진로다. 일반대학에서 물리학ㆍ건축학 등 전공을 가르친다면 이 학교들은 인테리어 디자인, 국제경영, 온라인 저널리즘 등 보다 세부적인 전공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독일의 다름슈타트공대ㆍ아헨공대ㆍ드레스덴공대 등 손꼽히는 일류대학의 대부분이 이들 학교를 끼고 있다. 고용친화형 대학을 육성해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특성화시켜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학의 장기 인턴십, 산학연계 등 산학협력 특성화 프로그램 및 해외 기업과의 협약을 통해 단순히 심화된 전공학습 수준을 넘어 '1대1 맞춤형 취업 컨설팅'까지 주선할 필요가 있다.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정부가 국가산업단지에 대학을 유치해 산학일체형 인재육성을 꾀하고 도심형 고급직업대학 설립을 지원해야 한다"며 "산업 부문 역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등 청년인력 수요 확대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차별화ㆍ특성화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대학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ㆍ기업이 단순히 서열화된 순위가 아닌 실질적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할 필요도 있다. 미국의 경우 실제 졸업률과 20명 혹은 50명 미만의 강의 비율, 고교성적 상위 10% 신입생 비율 등 세세한 정보가 모두 수험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OECD 등에서 대학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경우는 명문대학 순위보다 지역산업과 고등교육 수요를 철저히 파악해 취업률을 높이고 사회의 평가가 높아진 사례들"이라며 "대학들이 정부가 아닌 수요자를 무서워하기 시작할 때 진정한 시장의 위력이 발휘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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