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전 총리와는 엇갈렸지만 이·김 전 부총리와는 서강대 교수직에 함께 몸을 담았다. 그는 "남 총리는 1969년 9월 서강대 교수에서 재무장관으로 갔고 나는 1970년 3월에 와서 (학교에) 같이 있지는 않았지만 (재무장관 4년 임기가) 끝나고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 전 총리의 금융시장 개혁을 높이 평가했다. "1970년대 금융 '기관'이 공기업처럼 움직이자 남 총리는 은행 민영화를 단행했다. 그런데 상업은행 지분을 무역협회에 넘겼더니 상공부의 밥이 됐다. 그래서 담보 없이 어음만 잡고 빌려주는 단자회사를 만들었다. 그제야 시장 메커니즘이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투자금융은 하나금융의 전신이다.
김 교수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금융산업 현장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1986년부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고 1995년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장, 1997년 금융개혁위원회 부위원장, 2000년 은행경영평가위원장 등을 거쳤다.
국내 대형은행 합병에서도 그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00년 국민·주택은행 합병 추진위원장, 2005년 신한·조흥은행 통합추진위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에는 기업구조조정에서 채권금융기관 간 이견을 조정하는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김 교수는 "20~30년 전만 해도 한국 금융의 모델케이스로 외국에 자랑할 만한 곳이 장기신용은행과 동양이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장기신용은행은 1998년 국민은행과 합병되며 사라졌고 동양은 사기성회사채·CP 판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당시에는 동양이 제조업을 버린다면 은행을 맡겨볼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냈는데 최근 행태를 보면 금융을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쓴소리'로도 유명하다. 그는 철도노조 문제에 대해 "한번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국가 경제를 위해 정부가 질 수 없는 게임"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약력 △1939년 경북 상주 △1961년 서울대 경제학과 △1976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1982년 재무부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 위원 △1986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1994년 초대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 △1995년 재정경제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2001년 국민·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회 위원 △2001년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 △2005년 신한·조흥은행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 △현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