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정규직 갑질에… 비정규직 눈물

임금격차 넘어 인권침해까지… 일부, 성희롱·막말 등 횡포도

공공부문·민간기업까지 발생

상시·지속적 업무 담당자, 정규직 전환 대상 포함해야


서울대공원의 한 비정규직 셔틀버스 기사 김모씨(가명)는 평소 정규직인 B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B팀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김씨를 밟아버린다"는 등 막말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김씨가 상조 휴가에서 복귀하자 응급환자 수송을 담당하는 도움터로 배치해 갑자기 업무를 바꿔버렸다. 셔틀버스 기사를 응급환자 수송을 담당하는 도움터로 배치하는 것은 내부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조치지만 김씨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김씨가 직접 고용 2년을 채우기 전이라 아직 무기계약직인 공무직으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B팀장이 평소 "(공무직 전환이)다 되는 거 아니다" "가만히 안 두겠다"고 윽박을 질러왔던 만큼 부당한 인사조치와 막말을 말없이 버텨야 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단순한 임금 격차를 넘어 인권침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동시장이 양극화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일종의 신분 격차로 조직 내에서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일부 정규직 직원들은 비정규직을 막말과 성희롱 등 횡포의 대상으로 삼아도 문제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공원의 사례는 조직 내 만연한 비정규직에 대한 멸시와 차별대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시는 서울대공원의 한 여직원이 제기한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공원 내에서 이뤄지는 조직적인 비정규직 괴롭힘을 확인했다.

시가 27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가해자들로 지목된 이들은 과장과 팀장·대리 등 직급이 다양했으며 여성도 추행에 동참하는 등 성별이나 직급·근무기간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 직원에 대한 인권침해가 이뤄졌다.


A과장은 지난 7월1일 저녁 서울대공원 1차 워크숍 당시 노래방에서 한 여성 매표소 직원의 손을 잡아 모니터 앞으로 끌고 갔고 수시로 손을 잡았으며 옆에 앉아 어깨와 허리를 쓸어내리듯 만졌다. 같은 날 다른 용역 여직원에게는 "이렇게 술을 자꾸 따라 주면 역사가 이뤄진다. 역사를 만들려고 그러냐"라고 말하고 노래방에서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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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 기사에게 막말을 했던 B팀장도 1차 워크숍 장소로 가는 차량 안에서 직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어린 것들이랑 노니까 좋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같은 날 여성인 C실장은 B팀장에게 "결혼하셔야지요. (특정직원을 거론하며) 어떠냐"고 했으며 이어 "팀장님이랑 같은 방을 쓰면 되겠네. 오늘이 첫날밤인가? 합방, 2세도 보는 건가"라며 성희롱 행위를 적극 조장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매표소에 근무하는 20~30대 여성 비정규직이었다.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관계자는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조사를 시작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성추행보다는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횡포"라며 "단순한 성희롱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은 정규직 직원들이 비정규직 직원들을 추행이나 괴롭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조사 내용 중에는 정규직 직원들이 평소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며 술자리에 업무 스케줄을 조정하면서까지 매표소 여직원들을 술자리에 부른 사실도 있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정규직 직원들의 시각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이 같은 문제는 서울시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 전반과 민간 기업까지 퍼져 있다는 것이 인권위원회와 각 지자체의 지적이다. 인권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비정규직의 처우 문제에 대한 정부 개선이 시급하다고 보고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 교육기관 등에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간접고용 근로자를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할 것을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시가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이 이뤄지는 만큼 이를 빌미로 정규직원들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울 계획이다. 단순 성희롱과 언어폭력은 물론 업무배제·따돌림, 부당인사 조치 등을 뿌리 뽑도록 핫라인을 구축하고 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시 일자리정책과장은 "시에서 근무하는 비정규 근로자들은 업무지시를 하고 있는 바로 그 공무원이 본인의 공무직 전환여부를 100%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시키는 것을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심하게 관리하고 사후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서울대공원의 인권 침해와 관련 서울시장과 서울대공원장, 해당 용역업체에 시정권고를 내렸다. 시는 사건 가해자들을 징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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