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08> 매개가 필요한 시대


최근 임춘성 교수가 펴낸 책 ‘매개하라’.

너와 나를 한 단어로 표시하면 우리다. 같은 뜻이지만 같은 느낌은 아니다. ‘너와 나’는 좀 더 개개인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듯하고 ‘우리’는 둘을 뭉뚱그려서 하나로 만든 것 같다고나 할까. ‘사이’를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건 둘 이상을 하나로 만드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서로 출신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데 어느 날 갑자기 필요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처럼 행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럴 때 필요한 존재가 바로 매개자다. 중간에서 이어주는 조정자 또는 중재자 말이다. 과거 시장과 산업을 주도하던 기업들은 ‘지배자’ 또는 ‘주인’이라고 불렸다.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권력자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 내 경쟁 구도에서 물량 공세는 여전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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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습니다. 샤오미가 만들어내는 제품들의 가격은 우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가격대입니다. 샤오미는 공장도 없고 소프트개발자 몇 명이 만들어낸 회사라서인지, 하드웨어가 모바일 서버와 연결돼 만들어낼 다음 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중앙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한 말이다. 모바일 산업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중국이 엄청난 규모로 산업을 선도하는 모양새를 뒤바꾸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IT 강국이라고 믿고 있었고, 전세계도 훌륭한 한국의 하드웨어를 인정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샤오미, 팍스콘 등의 기업들이 ‘모방자’가 아니라 엄청난 기술 투자와 개선된 서비스의 질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어떤 자원을 많이 보유해서, 엄청난 시장 점유율을 갖춰서 경쟁하는 방식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해 보인다. 과거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 육군이 미군과의 전쟁을 결의하자 야마모토 이소로쿠라는 해군 사령관이 이런 말을 했단다. ‘지금은 무조건 맞붙으면 진다.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으로 어떤 것도 규모로 이길 수 없다.’ 지금 우리 산업의 형세가 그렇다. 정면 승부로 승기를 잡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직접 경쟁 대신 그들의 진짜 욕망을 건드려 주는 ‘매개자’로 돌변한다면 어떨까? 또 다른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매개하라’의 저자 연세대학교 정보산업공학과 임춘성 교수는 빠른 경쟁의 질서가 통용되는 시대에 전략적 매개자를 적극 육성하고, 그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 모델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자금 결제를 하거나 금융 상품을 거래하는 핀테크(fintech)도 점유와 획득이 아니라 매개와 통제의 관점으로 접근해야만 더 많은 사용자들이 몰려들고,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길 한복판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니는지 관찰할 수 있는 길모퉁이에 진을 치고 그들이 쉬고, 먹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이 기성 산업의 강자와 맞붙어 승리를 거머쥔 게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하나의 채널을 제공해 주는 사업자로서 성공했다. 김범수 의장은 말했다. “대부분의 비지니스는 무엇을 어떻게 팔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저희들은 누구를 참여시키고 이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할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이처럼 카카오톡은 ‘연결’ 즉 매개를 통해 가치를 창조해냈다. 경제를 이끌어 갈 신성장동력 발굴 분야로 ‘매개자의 길’을 눈여겨 봐야 한다. 꽤 승률 높은 게임이 될 수 있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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