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물가 관치로 잡히나] 정부 물가관리 무엇이 문제인가

금리·환율 대신 미시대책만 "예고된 高물가"<br>넘치는 유동성 불구 금리인상 시기 놓쳐<br>"가격억제 부작용에 인플레 압력 커질것"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주요부처 장관들이 지난 1월13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 국민경제대책회의를 마친 뒤 정부과천청사에서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윤 장관은 이날 "장·단기 물가대책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합동 비상물가대응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계속되는 물가폭등에 별 도움이 안 됐다는 지적이다. /서울경제DB


물가폭탄에 서민가계에 시름이 깊지만 정작 물가당국은 물가를 잡을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 통상적으로 정부가 물가를 잡는 정책 수단은 금리와 환율. 금리를 올리면 시중통화량이 줄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환율이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면 수입 물가가 낮아져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현재 이 두 가지 수단 모두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결국 기업에 가격을 낮추라고 '팔 비틀기'까지 동원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물가의 근본적인 대책인 거시 정책기조는 그대로 둔 채 가격억제라는 미봉책으로 변죽만 울리고 있는 셈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물가는 기본적으로 화폐 현상이고 통화량으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고된 재앙 물가폭탄=인플레이션 압력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예고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국가들이 위기극복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취하며 과잉 유동성이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국제유가 등 비용 측면의 물가상승 요인은 특히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쏟아부은 국제 유동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장에 유동성이 많이 풀렸다. 2009년에는 가계ㆍ기업의 단기자금 운용 규모라 할 수 있는 협의통화(M1)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0%까지 올랐고 유동성증가율이 명목 국내총생산(GDP)보다 빠르게 증가한다. 위기 이후 정상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여전히 시중에 돈이 넘친다. 금리는 2009년 2월 이후 세 차례 오르며 2.75%에 왔지만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 수준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유동성은 넘쳐나고 금리는 낮은 상황에서는 물가가 뛰기 마련이다. 문제는 물가상승이 비용측면에서 총수요 압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ㆍ월세 가격에다 서비스물가까지 상승세를 타며 수요 측면에 물가상승 압박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여기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성장이 버텨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경기가 침체되면 스태그플레이션도 우려된다. ◇금리인상 시기 놓쳐=지난해 12월 한국은행 15층 회의실. 지난해 마지막 기준금리를 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회의 이후에 김중수 한은 총재는 올해 들어 아홉 번째 의사봉을 담담하게 두드렸다. 일곱 번째 금리동결이었다. 시장은 예상했다는 듯 무덤덤했다. 김 총재는 유럽 재정위기와 연평도 포격 등으로 금리를 동결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치솟는 물가, 부동산 자산거품에 대한 우려는 불확실성에 다시 한번 파묻혔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정부는 물가폭탄에 휘청했다. 가을 배추파동을 겪은 뒤 연일 물가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미시적인 대책은 소용이 없었다. 오르는 유가 등 원자재 가격에 정부의 물가 통제수단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한은이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한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시장에 금리인상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물가상승의 조짐이 보일 때 앞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이 금리인상 시기를 놓치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월 4.1%에 이어 11월 3.3%, 12월 3.5%, 1월 4.1%로 한은의 중기물가안정 목표 중심치(3.0%)를 넘어섰다. 뒤이어 1월 금리를 올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물가는 뛰고 있다. ◇가격억제 후폭풍은 인플레이션 압력=정부가 가파른 물가상승에도 금리와 환율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것은 가계부채와 수출기업의 이익감소 우려 때문이다. 특히 금리인상에 따른 가계의 이자 증대는 바로 서민경제부담으로 이어지며 이명박(MB)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준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2월 금통위는 올 들어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대로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이 환율 하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부담에 금리를 동결했다. 금리가 오를 경우 글로벌 자금이 환차익을 노리고 국내로 대거 유입돼 환율 하락 압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거시 정책변수는 묶어둔 채 미시적이고 선별적인 가격정책만으로 물가를 잡으려다 보면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키워 폭발력을 커지게 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편입되는 자장면 값을 통제하면 자장면의 양이 줄거나 양파가 나오지 않고 연탄값을 억지로 묶어두면 CPI에 들어가지 않는 배달료가 오르기 마련"이라면서 "가격을 억제해 소비자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시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초보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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