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을 한 회사로 합쳐 오는 2020년 매출 40조원을 달성하겠습니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과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지난해 9월30일 거제조선소에서 공동 기업설명회(IR)를 열고 "양사의 합병은 두 회사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합병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양사가 합치면 핵심기술을 교류할 수 있고 기자재 공동 구매도 가능해 연간 1,000억원의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글로벌 저유가 등의 영향으로 양사의 실적이 하락해 합병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게 두 사장의 설명이었다. 재계에서는 양사의 합병으로 1년여간 이어져온 삼성 사업구조 재편이 마침표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뒤 양사의 합병 작업은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하나의 회사로 통합해 시너지를 내려던 당초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언제든 합병이 재추진될 수 있지만 그 시점까지는 각자도생의 길을 걸으며 괜찮은 실적을 거둬 주주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두 회사에 주어진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해 어떻게든 상승 반전시키는 게 양사의 최대 목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사정은 좋지 않다. 당장 수직 하락하는 기름값이 경영 전반을 옥죄고 있다.
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50.0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90달러 중반대를 유지했던 7개월 전의 반토막 수준이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흐름도 유가처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원유·가스 등 에너지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줄면서 삼성중공업의 드릴십(원유 시추선)과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 설비), 삼성엔지니어링의 화공플랜트 수주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올해 양사는 '생존을 위한 질적 경쟁력 강화(삼성중공업)' '경영내실화(삼성엔지니어링)'를 경영 기조로 삼았다. 두 회사는 지난해 9월만 하더라도 합병을 통해 '육상·해상 아우르는 초일류 종합플랜트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지만 지금은 미래 먹거리를 찾는 '공격'보다는 최대한 원가를 줄여 기존 수주물량을 소화하는 '방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경기 회복은 더디고 뚜렷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양사의 합병은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꾸준히 제기된다. 여기에 정부가 인수합병(M&A) 때 소액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제한하는 방향의 사업재편지원특별법(가칭)을 검토하는 점도 합병 기대감을 높인다.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때는 이를 반대하는 연기금·소액주주의 주식매수청구가 쇄도하며 금액이 1조6,299억원에 달해 계획이 백지화됐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지난해 말 기준 8,255명의 임직원을 올 말까지 7,550명으로 줄이기로 하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선 점도 합병시 주주들의 동의를 이끄는 데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