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히도 새 정부가 처한 나라살림 여건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불리하다. 저성장이 고착될 조짐을 보이는데다 대선공약 이행을 위한 복지지출까지 더해졌다. 경기둔화로 세금마저 덜 걷히면서 세계잉여금이 지난해 마이너스를 기록해 여윳돈마저 없다. 저성장 추세에서 복지지출 증가가 굳어지면 재정건전성이 급속히 훼손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대선공약을 반영하지 않아도 올해부터 5년간 해마다 20조원의 재정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2004년부터 도입된 국가재정계획은 기본적으로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하는 재정건전성 보강장치다. 문제는 해마다 수정하면서 당초 계획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관리 같은 재정건전성 목표는 있으나마나 한 숫자놀음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전 정부는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사정은 딴판이다. 지난해 3ㆍ4분기까지의 재정수지 적자는 역대 최고치인 50조원을 넘는다. 그나마 균형재정을 목표로 삼았다던 전 정부의 실적이 이럴진대 공약이행을 위해 135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게 현정부이니 어떻게 재정건전성을 유지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12일로 예정된 국가재정운용계획 첫 회의에서는 '건전재정기조 유지'라는 원론만 확인된다고 한다. 정책당국자들의 답답한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향이라도 제시돼야 한다. 과연 지금 같은 저성장 기조하에 복지공약 이행에 집착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