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계흐트리기」와 달관

「경계흐트리기」는 문학의 주제, 소재에서 방법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인간의 삶과 인간이 삶을 영위해가는 터전인 세계는 갖가지 경계선을 포함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 동물과 식물, 동물과 식물 안에서의 수다한 종류들, 육지와 바다, 낮과 밤, 계절, 선과 악, 삶과 죽음….우리는 어릴적부터 본능과 학습에 의해 이런 경계구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으며 나아가 삶과 삶의 밑받침인 세계를 구성하는 튼튼한 질서와 뼈대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과 세계의 이런저런 모퉁이와 부딪치면서, 그 경계선이 생각했던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 아니며, 일사불란하다고 여겼던 그 질서도 여기저기 금이 가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금간 곳과 뚫린 구멍에서는 불합리와 불확실성과 나아가 불가사의가 새어나오고 흘러나오고 또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이윽고 삶과 세계의 배후에서 삶과 세계를 운영하는 힘은 질서와 합리가 아니라 질서와 합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질서와 합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 배후의 실체는 질서와 합리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질서도 아니고 합리도 아닌 것이 질서와 합리를 다스려나간다는 불가사의와 대면하게 된다. 이런 경지를 뚫어보고 조화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지혜이고 달관이다. 문학이 관심을 가지고 묘파해 내려고 하는「경계흐트리기」가 바로 그 지혜와 달관의 경지일 것이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뚜렷하게 구분이 지어져 있다. 그러나 그 구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봄속에 여름이 들어 있고 여름속에 가을이 들어 있음을 안다. 아니 봄속에 여름 가을 겨울이 이미 자리잡고 있음을 꿰뚫어 본다. 또한 삶속에 죽음이, 죽음속에 삶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지혜와 달관은 깊고 넓다. 지혜와 달관속의「경계흐트리기」는 겉껍데기 깨부수기가 아니라 조화이루기 이다. 그러나 삶의 현실에서 경계와 질서는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새봄 속에 겨울이 들어 있음을 굳이 뚫어볼 필요가 있는가. 경계가 뚜렷한 봄으로 맞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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