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물가지수 산정 품목'으로 본 생활 변화상

선풍기·냉장고·분유 30년간 포함 '장수'<br>교육열에 독서실비도… 삐삐·흑백TV 등 단명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에서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다고 하지만 세탁기가 더 혁명적"이라고 주장했다. 흔히 사람들은 가장 최근 상품을 혁신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세탁기 같은 가전 제품은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을 이끄는 등 일상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 냉장고나 TV가 각각 식품, 오락 산업에 미친 영향이 인터넷이 정보통신에 끼친 영향보다 더 뒤진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이와 관련 국가 통계위원회는 오는 23일 지난 5년간 사용해 온 '2005년 물가 기준 상품' 대신 2010년 기준을 새로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75년 이후 5년마다 개편되는 물가지수 품목들은 우리 생활상의 변화를 그대로 드러난다. 선풍기, 냉장고, 분유, 연탄 등은 지난 30년이나 살아남은 반면 무선호출기(삐삐), 전자계산기, 흑백TV 등은 한 순간 유행을 타다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냉장고ㆍ분유 등 여전히 영향력 막강= 21일 서울경제신문이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를 분석해보니 30년간(1975~2005년) 물가지수 산정에 매번 포함된 품목들은 총 202개였다. 이 가운데 쌀, 밀가루, 쇠고기, 돼지고기, 조기, 갈치 등 식료품이나 정장, 점퍼, 양말 등 의류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품목도 다수 있다. 대표적인 건강식품인 인삼이 포함돼 있는 게 대표적이다. 높은 교육열을 반영하듯 독서실비도 계속 반영되고 있다. 설렁탕과 냉면, 비빔밥, 자장면, 짬뽕 등도 예전부터 사랑 받고 있는 외식품목이다. 혼합비타민제도 대표적인 건강보조식품으로 남아 있다. 생화(꽃)가 꾸준히 소비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30년이면 부모 세대가 구입했던 품목들을 자식 세대도 여전히 구입한다는 면에서 (이들 품목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선풍기, 냉장고, 난로, 분유, 연탄, 믹서, 후라이팬, TV수신료 등이 세월의 부침에도 30년 동안 장수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들 상품은 인터넷이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 최신 정보기술(IT) 제품에 우선하는 최우선 필수품인 셈이다. ◇흑백TVㆍ삐삐 등은 단명= 반면 기술 변화가 심한 품목들은 단명하고 말았다. 대표적인 게 삐삐로 지난 95년 포함됐지만 휴대폰의 등장으로 불과 5년만에 제외됐다. 또 흑백TV 역시 지난 70년 포함됐다 15년만에 물가 기준 품목에서 탈락했다. 전자사전도 2005년 포함되었지만 이번 2010년 개편안에서 제외될 게 확실시된다. 또 이번 개편안에서는 영상매체대여료(비디오), 공중전화통화료, 유선전화기, 캠코더, 정수기 등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식료품에서도 유행은 있었다. 건빵은 1970년 포함되어 1980년 제외된, '70년대의 대표적 간식'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기술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보산업(IT) 제품의 경우 제품 수명수기가 짧아진 데다 우리 국민들의 취향이 비교적 빠르게 변화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한다. 이정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 국민들은 제품 정보에 대한 수용 속도가 비교적 빠르며 기업들도 소비자 입맛에 맞게 제품 출시를 신속히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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