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대주주 형제의 경영권분쟁을 계기로 재벌의 고질적 지배구조 문제인 순환출자 및 그 시발점인 사업지주회사가 다시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현대엘리베이터에 이어 두산그룹 순환출자의 한 축인 두산산업개발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의 공정거래법 헌법소원으로 재벌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당내에서 순환출자를 장기적으로 금지하는 방안도 논의중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분쟁의 핵 = 두산그룹은 두산산업개발→㈜두산→두산중공업 등 3개사가 순환출자 형태로 묶여있고 이중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와두산엔진을 소유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지난 3월말 현재 두산산업개발은 ㈜두산 지분을 24.88%, ㈜두산은 두산중공업지분을 41.5%, 두산중공업은 두산산업개발 지분 30.08%를 각각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용오 명예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을 그룹에서 떼어내 자신과 아들에게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고 박용성 회장측으로선 두산산업개발을 분리하면그룹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관측되고있다.
이로 인해 지난 22일 주식시장에선 검찰 수사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우려로 두산그룹주가 모두 폭락한 반면 경영권 분쟁의 핵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두산산업개발만 3% 상승하는 기현상을 빚었다.
◆ 삼성물산.현대家 경영권 분쟁과 '판박이' = 지난해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로인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부상했던 삼성물산이나 현대그룹과 KCC간 경영권 분쟁역시 순환출자와 그 중심인 실질적 지주회사를 둘러싼 분쟁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두산그룹 형제 갈등과 같은 성격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3.48%)를 비롯해 삼성정밀화학(5.59%) 삼성증권(0.27%) 삼성테크윈(4.28%) 제일기획(12.64%) 등의 계열사 지분이 있고 삼성물산의 대주주는삼성전자의 자회사 삼성SDI인 전형적 순환출자 구조를 지녔다.
삼성물산을 장악하게 되면 삼성SDS 등 비상장사 지분을 빼고도 삼성계열 상장사지분만 3조4천억원(22일 종가기준)을 손에 쥘 수 있는 구조다.
또 지난해 3월 주총을 앞두고 불거진 현정은 현대 회장과 KCC간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도 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도 지주회사를 통해 그룹의 지배권을 유지할 수있었던 '재벌식 소유구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아산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던 터여서 현 회장측과 KCC측은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놓고전면전을 벌였다.
◆ 지주사 '할인'은 지배구조 결함을 반영 = 삼성, 현대, 두산 모두 대주주가순환출자 및 실질적 사업지주회사를 통해 적은 지분의 비용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의 가능성이 제기됐거나 실제 불거졌다.
문제는 재벌이 이런 '위기'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오너 소유'라는 인식에 근거한 계열사 동원 등과 같은 수단을 활용해 국내 시장 전체의 지배구조에 대한평가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실질적 지주회사의 기업가치가 자사가 보유중인 지분 가치의 합계에도 못미치는현상은 바로 이러한 지배구조 결함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경우처럼 외국계 투자자들이 기업가치 제고를 내세워 계열사 지분매각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등 보유한 상장사의 지분가치가 3조4천억원에 달하지만 시가총액은 2조3천억원에 불과하다.
두산그룹도 중간지주회사격인 ㈜두산의 시가총액이 3천235억원인 반면 두산중공업, 삼화왕관, 오리콤 등의 지분가치는 7천억원대로 2배를 훨씬 웃돈다.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정재규 수석연구원은 "순환출자는 한 기업의 부를 다른 기업으로 이전하면서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고 소량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경영에 실패해도 자신은 책임지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김종수 최윤정 기자